한일간의 극적 협상 분위기는 20일 도쿄(東京)에서 먼저 감지됐다.
지난 주 우리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대한 수로측량 계획을 국제수로기구(IHO)에 통보한 이후 “국제법상 문제가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강행의지를 표명해왔던 일본 정부가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외무성 차관의 방한을 결정하는 등 방향 전환에 나섰기 때문이다.
야치 차관의 이례적 방한은 일본이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일본은 이대로 한국과 정면충돌 할 경우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나 교과서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최대 현안의 하나로 생각하는 일본 정부가 최근 겨우 잡은 한국과의 연대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크게 작용했다.
또 이번 사태를 주시하고 있는 미국이라는 존재가 한국과의 정면충돌을 피하도록 무언의 압박으로 작용하는 등 복합적인 요인이 일본의 방향전환을 유도한 것 같다.
이번 사태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아베 신조(安倍三晋) 관방장관 등은 예상을 훨씬 넘는 한국측의 초강경 대응에 크게 당황했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하자 결국 외무성이 전면에 나서는 형태로 사태 수습에 들어간 것이라고 도쿄의 소식통들은 전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야치 차관의 방한이 ‘일본의 굴복’으로 해석될 소지를 우려해 끝까지 고심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야치 차관의 방한이 이번 사태의 해결로 곧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협상이 결렬될 경우 일본이 측량을 강행하는 명분 쌓기에 이용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측량선을 투입하더라도 일본 정부가 끝까지 노력했다는 인상을 국제사회에 심어준다는 것이다.
애당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태가 일본이 잃을 게 하나도 없는 카드라는 시각이 많았다. 일본 입장에서는 현시점에서 측량을 철회하더라도 독도가 분쟁지역이라는 인상을 국제사회에 어느 정도 심어주는데 성공했다. 철회 과정에서 EEZ협상 재개, 납북자문제에 대한 협조 등 한국측으로부터 얻어낼 소득도 기대할 수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21일부터 시작되는 야스쿠니신사의 춘계대제 기간 중 참배할 지도 모른다는 보도도 나와 한일간의 긴장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그 동안 소극적 보도로 일관했던 일본 신문들은 20일 이번 사태를 1면에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방송들은 돗토리(鳥取)현 외항에서 강풍과 거친 파도를 견디며 출동대기중인 해상보안청의 측량선들을 수시로 보여줘 긴박감을 더했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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