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만하(74) 시인의 시는 꼿꼿하다. 서정과 운율에 기대는 법 없이 주지(主知), 그 정신이 직조하는 이미지로 시종여일 직립한다. 수직으로 서서 죽는 비처럼. 그의 시는 은근히 철학적이고 노골적으로 산문적이다. 그럼에도 그의 시에 서정과 리듬이 성글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의 서정은 팽팽한 인식론의 긴장 속에 땀처럼 뚝뚝 떨어지고, 리듬은 율격을 넘어 이미지의 가락을 타고 흐른다. 그의 새 시집 ‘야생의 꽃’(솔 발행)의 시들은 그렇게 꿋꿋하면서도 낭창낭창하다. 가령 그의 시 가운데 짧은 편에 드는 이런 시.
“고삐를 잡은 실루엣의 그가 지평선 위에 서는 것은 새로운 전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초원이 펼치는 초여름처럼 살아 있는 종족의 피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천 리 모래 바람을 달려 그곳에 이르면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지평선이 다시 태어나는 지점. 가까움이 그대로 아득히 먼 것으로 뒤집어지는 포옹 같은 거리의 반전. 밤색 말 등에 걸터앉은 그가 실눈으로 노려보는 지점은 끊임없이 후퇴하는 야성의 거리다.”(‘흉노의 지평선’전문)
이처럼, 그의 시는 대개 지평(혹은 수평)의 이미지 위에 선다. 서서, 바다와 하늘과 사막과 야생의 들판을 응시하고 사유한다. 원경의 수평적 이미지는 주체의 수직성, 그 지향의 정신을 도드라지게 하면서 시집 전체의 기하학적 구도를 완성해나간다. 시의 십자형 뼈대를 두고 시인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어디에도 기대지 말자는, 오직 언어와 언어의 이미지로 직립해야 한다는 시적 자의식이 그렇게 드러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그 공간의 기하학이 시간으로 전이될 때, 그 교차 지점에서 그의 ‘순간’이 포착된다. “우리들이 흔히 모르고 지나지만 하늘을 날던 새가 잠시 제자리에 서고, 몸을 흔들던 풀숲이 한순간 움직임을 잃어버리는 감쪽 같은”(‘함양 상림에서’부분) 그런 ‘시간’이다.
“소리꾼 들숨 끝에 깃든 폭발 일순 전의 외로운 밀도”(‘운봉길’)
“다도해 물빛이 섬 그림자 엷은 서러움을 머금기 시작하는 순간”(‘강진 앞바다 해거름’)
“하루가 다르게 여위는 햇살이 투명하게 눈에 보이는 늦가을의 한 순간. 지구는 잠시 무게를 버리고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가벼움이 되”는 그 순간(‘엷은 풀빛의 가벼움’)
“내(투포환 선수) 숨결이 물질(포환)의 숨소리에 겹치는 순간”(‘포환 던지기’)
그의 ‘순간’들은 시가 잉태되고 사유가 풀려나가는 시작의 순간이고, 시가 담고 있는 온 세계, 그리고 과거와 미래가 한 점에서 포개지는 ‘절묘한 한순간’이다. 영원만큼 긴 ‘순간’, 전체보다 큰 ‘부분’이다.(‘흙의 꿈’) 시인은 “옳은 경(經)들을 보면 순간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품는다고, 순간이 영원이 되는 그런 순간이 있다 하더라”고 말했다.
그의 시가 석탄기나 데본기의 아득한 시간 속 한 순간을 포착할 때, 거기 깃들인 죽음이 우주의 연륜으로 깊어지고 넓어져 “탄생과 같은 수의 죽음이 지구에 있다”(‘동해 과메기 덕장을 지나며’)고 할 때, 그 고독하게 빛나는 ‘순간’과 ‘부분’ 안에서 생명과 죽음도 서로에게 순하게 닿아 순환의 거대한 기하학을 완성한다.
하지만 그의 시는 그 순환 너머를, 아니 그 순환 이전의 ‘야생’을 넘겨다본다. 의미를 품지 않은 소리의 아름다움, 사람의 시선이 머문 적 없는 야생의 꽃,(‘야생의 꽃’) 최초의 인간이 출현하기 이전의 야생의 숲(‘산이 일곱 가지 빛깔로 물들 때’), 말의 오염이 없었던 야생의 세계(‘나로도 복수초’)….
시인은 “날개가 무게를 가지기 시작하는 피로의 극한에서 고니가 다시 날개를 치는 것”이 “시원의 풍경을 향한 세찬 그리움 때문”이라고, “(그) 끊임없는 날갯짓이 고니의 실체”라고 썼다.(‘고니의 실체‘)
그는 내일도 여행지를 떠돌며 ‘절묘한 한순간’들을 갈구할 것이다. 그리고 늦은 밤 깨어 이렇게 꼿꼿한 시들을 쓸 것이다. 을숙도의 고니가 그 필사의 날갯짓으로 위기의 하늘을 저어 시원과 야생을 향해 나아가듯.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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