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검찰이 현대ㆍ기아자동차를 수사한다는데 예정된 물량을 받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는 겁니까?”
최근 현대차 수출 담당 직원들은 해외에서 걸려오는 이러한 문의에 해명하느라고 진땀을 흘리고 있다. 해외 언론까지 현대ㆍ기아차 악재를 대서특필하면서 마치 정상적인 업무에도 큰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검찰 수사 이후 계약을 취소한 사례는 없다. 그러나 그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브랜드 이미지의 훼손이라는 게 업계 지적이다.
자동차에 있어 브랜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품질이 평준화하면서 자동차 구매 기준 가운데 브랜드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가격이나 출력, 연비 등의 객관적인 지표보단 해당 브랜드가 가진 이미지와 정체성이 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이런 차원에서 현대ㆍ기아차는 그 동안 쌓아온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위기에 놓였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현대차는 2004년 미국의 자동차 품질 평가 기관인 J.D.파워의 신차품질조사(IQS)에서 102점을 획득, 일본 혼다와 함께 공동 2위를 차지했다. IQS는 신차 100대당 결함수를 계량화한 것으로 숫자가 낮을수록 품질이 우수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현대차의 성적은 101점을 받은 도요타보단 못하지만 벤츠와 BMW, 포드 등을 크게 앞질러 업계를 놀라게 했다. 특히 2000년 조사 때 무려 203점에서 4년 만에 절반 가까이 결점을 줄인 것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장기화하면서 이러한 명성에 흠이 가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현대ㆍ기아차도 선진 경영 시스템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한 사람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경영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고언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몽구 회장이 검찰 수사 초기 출국한 뒤 그룹의 경영이 사실상 공백 상태에 빠진 것은 얼마나 위기 관리에 취약한 지를 보여주는 단적이 사례”라며 “시도 때도 없이 하는 인사 관행도 소신 있는 책임 경영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현대ㆍ기아차가 세계 자동차 시장의 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품의 경쟁력을 확보, 고부가가치화를 이뤄내야 한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현대ㆍ기아차의 대당 판매가는 1,340만원(2004년 기준)으로 2,560만원인 닛산자동차나 2,440만원인 도요타에 비해 턱 없이 낮다. 이 때문에 영업이익률도 5.8%에 그쳐 닛산(9.4%)이나 도요타(8.5%)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고부가가치화를 위해서는 연구ㆍ개발(R&D) 투자를 더욱 더 늘려야 한다. 미래 자동차 시장을 지배할 하이브리드 차와 연료전지 차의 기술력은 선진국을 100이라고 했을 때 우리나라는 각각 38, 36에 불과하다.
특히 미국과 일본, 중국 정부가 나서 하이브리드 차와 연료전지 차의 연구ㆍ개발 및 상용화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 정부도 가벼이 볼 수 없는 대목이다. 협력적 노사관계 또한 지속 성장을 위한 기본 요건이다.
업계 관계자는 “경쟁사는 이미 4단 기어로 달리고 있는 데 현대ㆍ기아차는 2단에서 3단으로 올리다가 그만 기어가 빠져버린 꼴”이라며 “그러나 이러한 위기를 선진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글로벌 전쟁에서 승자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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