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검찰에 나온 20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주변에는 이른 아침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원 20여명이 몰려와 정문 앞에서 시위를 했고 경찰이 겹겹이 철통 경비를 폈다.
검은색 양복을 차려 입은 현대ㆍ기아차 그룹 임직원 100여명이 청사 앞에 도열했다. 50여명의 취재진도 장사진을 쳤다. 날씨마저 을씨년스러웠다.
오전 9시30분. 출석하기로 한 시간이었지만 정 사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 시각 정 사장 측은 “혼잡한 정문을 피해 뒷문으로 들어가면 안 되겠느냐”고 검찰의 의사를 타진했다. 대답은 냉랭했다. “그래도 정문으로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7분 후 일순간 소동이 일었다. 정 사장 도착을 가까이서 찍으려는 한 방송사 카메라 기자와 이를 제지하려던 현대차 용역직원 간에 주먹다짐이 벌어졌다. 이 때 검은색 승용차가 미끄러지듯 정문으로 들어왔다.
정 사장이 차에서 내렸다. 힘이 없어 보였다.
청사로 통하는 계단 중간에서 한 차례 사진 취재에 응한 뒤 “임직원 여러분과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했다. 굳은 표정이었다.
“비자금과 경영권 편법 승계를 인정하느냐”고 묻자 “위에 올라가서 검찰 조사에 성실히 응하겠다”고 짧게 답한 후 곧장 11층 조사실로 향했다.
고(故)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1992년 대선 비자금 사건),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1978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1992년 세금 포탈, 2003년 현대비자금 사건)에 이어 현대가(家) 3세마저 검찰에 족적을 남기는 순간이었다.
김지성 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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