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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정운찬식 리더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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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정운찬식 리더쉽

입력
2006.04.2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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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서울대총장의 4년 임기가 7월 19일로 만료된다. 이미 후임을 뽑는 절차가 시작돼 20일 현재 9명의 후보가 물밑 선거전을 벌이고 있다. 25일에 5명으로 압축한 뒤 5월 10일 교직원 직접선거를 통해 최종 후보자 2명을 교육부에 추천하게 된다. 서울대 총장선거는 국민적 관심사다.

정운찬 총장이 학내외의 폭 넓은 지지와 신뢰를 받아온 터여서 후임자에 대한 관심은 클 수밖에 없다. 직접선거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종전과 같은 방식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관리를 받으며 치러지는 선거라는 점도 새겨 보아야 할 대목이다.

●정직 성실 투명이 지도자 덕목

정 총장은 어떤 총장이었으며 무슨 일을 했던가. 오늘날 대학총장의 이상적인 모습은 학교 발전을 위해 돈을 많이 끌어들이고 수익을 창출해내는 CEO로 고착된 것처럼 보인다. 모든 대학의 총장들이 이 부분에 두드러진 업적을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끝내 중요한 것은 총장은 역시 학문적 권위와 대학 자율을 상징하는 최고 지성인이라는 점이며, 그 점에서 정 총장은 확실하고 뚜렷한 카리스마를 가질 수 있었다. 그렇다고 상징성에만 머무른 채 학교 발전기금을 끌어 모으는 데 소홀했느냐 하면 오히려 남들보다 훨씬 탁월했다.

그가 해낸 두드러진 일은 대내적으로 정원 축소와 지역균형선발제를 비롯한 개혁이었고, 대외적으로는 정부에 맞서 대학의 자율권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었다. 그가 투쟁이라는 말을 싫어할 것이 너무도 명백하므로 노력이라고 썼지만, 이것은 어쨌든 간단치 않은 싸움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는 갈등이다. 서울대의 큰 위기였던 황우석파동에 대해서도 분명한 처신을 했다. 요즘도 그는 광신적인 황우석 지지자들 때문에 시달리고 있다.

정 총장은 최근 한 인터뷰를 통해 이런 일들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그리고 투명하게 추진하다 보니 신뢰를 얻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정원축소와 같은 난제를 풀어 나가는 데는 그런 자세가 당연히 필요하지만, 민주적 의사결정과정까지 지켜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나에게는 아버지가 네 분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민족대표 33인에 더해 ‘34번째 독립운동가’로 꼽혔던 스코필드 박사와 경제학자 조순 박사는 그의 정신적 학문적 아버지였고 작은 아버지는 그를 길러준 양부였다. 하지만 정신적 토대를 만든 사람은 역시, 겨우 아홉살 때 여읜 친아버지였다. “밥 먹을 때 손에 닿지 않는 음식은 집으려 하지 마라”, “세 번 이상 부르지 않으면 잔칫집에 가지 마라”는 밥상머리 교육에 예의와 염치에 관한 게 다 들어 있었다. 그게 결국 정직 성실 투명 아닌가.

오늘날 각계 지도자들은 저마다 해당 분야의 최고 지식인이다. 지식인이라면 당연히 자기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 풍부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겸양 정직 윤리 이런 덕목이 바탕에 깔려 있지 않으면 전문지식은 한갓 해악이나 독선으로 전락할 수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러플린 총장의 실패에서도 그런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 총장은 차기 대통령의 조건에 대해 ‘뚜렷한 방향감각과 풍부한 상식과 교양, 사고의 유연성을 갖추어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을 꼽았다. 그런 조건은 대통령이 아니라 대학총장도 마찬가지이며 어느 조직에서나 고대하는 인간상이다.

●할 일이 많은 서울대 후임 총장

올해 개교 60주년을 맞은 서울대의 후임 총장은 할 일이 많다. 서울대 폐지론을 극복하면서 세계 100위권 대학에 간신히 들어 있다는 평가를 더 끌어 올려야 하고, 법인화와 대입제도를 둘러싼 안팎의 갈등을 헤쳐가며 자율성을 지켜야 한다.

자율성 문제는 자칫 후임 총장의 임명과정에서부터 다시 불거질 소지도 있다. 정 총장은 이런 총장의 역할에 대해 내외부적 기대치와 수위를 높여 놓은 인물이다. 그러나 정운찬은 정운찬일 뿐이다. 정운찬 이전에 정운찬 없고 정운찬 이후에 정운찬 없다. 정운찬은 하나다. 다만, 정운찬식 리더십은 또 있을 수 있으며 있어야 한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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