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도키아(Cappadocia). 딴세상이다.
떠돌이 행성 위를 거니는 듯, 꿈속이나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이상한 들판 위에 섰다. 공상 속의 풍경이다. 버섯 모양의 바위가 불쑥 솟았고 아이스크림콘 같은 바위가 떼를 이뤘다. 그 기암마다 스위스 치즈 같은 구멍이 나있는데 이는 창문이고 대문이고 테라스다. 누가 만든 작품이고, 그곳에 살던 이는 또 누구인가.
문명의 교차로인 소아시아, 터키의 땅 한복판에 카파도키아가 자리하고 있다. 이 기괴한 풍경은 1,000만년 시간이 빚은 예술. 화산이 폭발해 용암이 흐르고, 또 다른 화산의 새 용암이 덮고 또 덮어 땅으로 굳어진 것을 바람이 깎고 빗물이 훑어내며 만들어내 조각들이다. 그 공상의 바다 위로 풍선을 타고 날아올랐다.
신새벽 잠에서 덜 깬 몸을 추스려 호텔 문을 나섰다. 열기구 업체에서 마중 나온 차를 타고 한참을 가니 너른 벌판이다. 여명이 카파도키아 기암 능선을 평면의 수묵화처럼 그려내고 있다. 열기구 불꽃이 굉음을 쏟으며 타오르자 축 늘어졌던 거대한 풍선이 점차 부풀어 올랐다. 20분가량 지났을까. 풍선은 하늘로 곧추 섰고 태양도 그에 맞춰 땅 위로 몸을 드러냈다.
기구에 몸을 싣고 드디어 둥실. 기구는 땅을 떠났고 몸은 하늘로 날았다. 발아래 펼쳐지는 기암의 풍경. 같은 시간 앞서거니 뒷서거니 뜬 열기구들이 잿빛의 카파도키아 고원 위에 알록달록한 빛으로 생기를 넣고 있다.
기암의 바다를 굽어보며 벌어진 턱 사이로 ‘어허’ 탄성 소리가 저절로 새어 나오는데 함께 탄 중년의 여인인 스위스 관광객들도 연신 “울랄라(Oh lala)”를 외쳐댄다.
머리 위 풍선에 열을 뿜는 발화장치 굉음이 장엄한 음악으로 귓전을 울린다. 마치 록그룹 퀸의 ‘위 아 더 챔피언’처럼. 올록볼록한 기암들 위로 일행을 태운 열기구의 그림자가 유유히 지나간다. 감탄에 빠진 채 한시간쯤 흘렀나, 이제부터 고민이다. 아니 저 풍경을 어떻게 글로, 말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ㆍ자연 복합유산인 카파도키아의 기암 풍경을 둘러보는 중심지는 괴레메다. 이곳을 중심으로 위르굽, 아바노스 등을 둘러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관광코스. 괴레메 야외 박물관은 기암의 모습도 볼만하지만 그 안에 꾸며진 암굴 교회로 유명한 곳. 기암속 교회만도 10여 개에 달한다.
그 모양 등에 따라 애플교회, 뱀교회, 다크교회 등으로 불린다. 겉모습과 달리 실내에 장식된 화려한 프레스코화들이 당시 교인들의 신심을 짐작케 한다. 괴레메의 우치사르언덕과 비둘기계곡은 기암을 펼쳐놓은 풍경이 장쾌하고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파샤바흐의 기암은 꼭 거대한 남근석을 닮아 민망할 지경이다.
카파도키아는 전략적 요충지로 고대부터 잦은 싸움이 일어났던 곳이다. 사람들이 전란을 피해 몸을 숨겼던 곳이 바로 이 기암들이었다. 바위는 사암보다 부드러워 속을 파내기가 수월하다. 깊은 우물(deep well)이란 뜻의 데린쿠유에 가면 벌판 아래 거대한 지하도시를 만난다. 기암 속이 아닌 땅속에 꾸며놓은 피란처다. 지하8층 구조로 50m까지 내려간다고 한다. 피란민들과 종교의 박해를 피해 숨어든 초기 기독교인들의 자취가 남아있다.
카파도키아(터키)=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터키의 중원/ 역사의 땅
메소포타미아 문명, 트로이, 그리스 문명, 페르시아, 알렉산더, 로마제국, 십자군, 칭기스칸의 몽골, 오스만 제국, 세계 대전…
지금의 세계지도를 그려낸 세계 역사의 주요 흐름이다. 그 4,000년 세계사의 중심에 터키가 있다. 터키인들은 “터키의 역사가 세계사이고 세계사가 곧 터키의 역사”라고 자부한다.
동양과 서양을 잇는 요충지로서, 끝없이 펼쳐지는 비옥한 평원은 만년을 이어 10개 이상의 문명을 낳았고 또한 수많은 전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래서 터키로 떠나는 길은 오랜 역사로의 여행이고 찬란했던 문명과의 엄숙한 만남의 시간이다.
터키의 수도는 앙카라다. 하지만 역시 터키의 경제, 문화의 중심지는 이스탄불.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 등의 옛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스탄불은 동로마제국의 중심으로, 오스만제국의 수도로 1,600년간 제국의 도읍지였다. 유럽과 이슬람의 문화가 교묘히 결합된, 독특한 분위기 자욱한 역사의 도시로 안내한다.
♡ 아야소피아
이스탄불의 상징이다. 신성한 지혜라는 뜻을 가진 비잔틴 건축의 최고 걸작이다. 537년 완공된 지금의 아야소피아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위대한 로마의 부흥을 위해 복원한 성당이다.
동로마제국의 중심으로 1,000년을 군림해오던 아야소피아는 1453년부터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오스만제국에 의해 회교사원으로 거듭났다. 술탄 메흐메트 2세는 빛 바랜 분홍빛 성당의 네 귀퉁이에 4개의 첨탑을 올리고, 내부 성당 장식 위에 회칠을 해 모스크로 삼았다.
성당과 모스크로 1,500년의 역사를 품은 이 건물은 터키 건국의 아버지인 아타튀르크 대통령에 의해 1935년부터 일체의 종교행위가 금지된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에 덧칠한 회벽을 벗겨내자 찬란한 모자이크 벽화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오스만제국의 회칠이 되레 기독교의 유적을 가장 잘 보존한 셈이다. 실제 아야소피아 성당을 가장 많이 훼손한 장본인은 기독교인인 십자군이었다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 블루모스크
아야소피아에서 200m 건너편에 있는 회교사원이 블루모스크. 술탄 아흐메트 1세가 아야소피아보다 더 큰 규모로 짓도록 해서 만든 모스크다. 1609년 착공해 17년 만에 완성된 오스만제국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블루모스크란 이름은 내벽을 장식한 푸른 타일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여전히 신도들의 기도장소로 이용되지만 관광지의 인상이 크다. 입장료 대신 입구에서 기부금을 받는다.
♡ 슐레이마니에 모스크
이스탄불 대학을 끼고 골목을 접어 들어가면 슐레이마니에 모스크다. 거대한 돔과 4개의 첨탑을 지닌, 오스만제국의 10번째 술탄인 슐레이만 1세가 당대 최고의 건축가 마말 시난에게 짓도록 명한 모스크다.
시난은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비견되는 천재적인 건축가로 수많은 아름다운 이슬람 건축물을 만들어냈다. 28개의 돔으로 뒤덮인 이 모스크는 화려한 장식이나 규모도 놀랍지만 관광지의 분위기 대신 이슬람 사원다운 차분함이 있어 좋다. 모스크 정원에는 슐레이만과 그의 왕비의 묘가 있고 이 모스크를 지은 시난도 그 옆에 누워있다.
♡ 톱카프 궁전
아야소피아 옆의 톱카프 궁전은 오스만 제국의 24명의 술탄이 400여년 거처했던 궁이다. 성 안은 잘 꾸며진 공원. 사이프러스 나무와 플라타너스 나무가 길게 도열해있고 풀밭은 이제 막 피어난 야생화로 눈부시다.
술탄의 여인들이 기거하던 하렘은 궁전의 또 다른 볼거리다. 화려한 실내 장식은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여인들이 그 욕망을 치장하는데 쏟았기 때문이란다.
궁전은 그 자체도 볼 게 많지만 아시아와 유럽을 한번에 볼 수 있는 전망 때문에도 유명하다. 궁전의 동북쪽 언덕 위에 서면 보스포러스 해협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바다에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쾌속선과 화물선이 부지런히 오가고 있다.
이스탄불(터키)=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터키의 중원/ 문명의 바다
지중해, 에게해, 마르마라해 그리고 흑해. 소아시아라 부르는 터키를 감싸고 있는 바다들이다. 이중 터키의 서남부 해안은 그리스, 로마의 문화권으로 신화처럼 찬란한 문명이 지금껏 살아 숨쉬는 곳이다. 나른한 봄볕을 받으며 ‘문명의 바다’ 지중해와 에게해의 해변을 따라 내처 달렸다. 쪽빛의 바다와 쪽빛의 하늘은 가슴을 뛰게 했다. 살갗을 스치는 바람은 아름다운 역사를 노래하고 있었다.
안탈랴(Antalya)에서 맞이한 아침. 지중해와의 첫 만남은 그저 그랬다. 쪽빛 바다에 쏟아진다는 그 강렬한 햇살이 구름에 가렸다. 활처럼 굽은 해안선과 급한 물결을 이루고 있는 산들이 도시를 감싸고 있다. 3,000m가 넘는 큰 산 위에는 아직도 눈이 남아있다. 높은 곳은 4월까지는 눈이 쌓여 산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와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길 수 있다고.
올림포스(Olympos)까지 해변을 끼고 내처 달리는 길, 정오가 가까워 오자 태양은 구름을 벗어났고 코발트빛 지중해가 드디어 제 빛을 내기 시작했다. 올림포스는 산과 계곡, 바다를 함께 즐길 수 있는 호젓한 곳. 한적한 백사장을 지나 계곡으로 들어가니 바실리카 등 로마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로마시대에는 귀족들의 인기 있는 휴양지였던 곳으로 지금은 전세계의 젊은이들이 트레킹을 하려 많이 찾는다.
눈부신 해변과 야생화 가득한 들판을 번갈아 가며 도착한 미라(Myra)는 산타클로스로 알려진 성 니콜라스의 교회로 유명한 곳. 로마식 원형극장과 바위절벽에 굴을 깎아 만든 암굴묘가 볼만하다. 원형극장의 꼭대기에 서면 멀리 마을과 전원의 평온한 풍경을 함께 느낄 수 있다.
리키안족들의 바위무덤이 떼를 이룬 게코바(Kekova)에서 배를 타고 도착한 시메나(Simena)는 비잔틴 시대 지어진 아름다운 도시다. 바다 물빛 만큼 아름답고 조용한 포구는 마냥 이곳에 머물고 싶게 만든다. 바닷물 속에는 수 차례 지진으로 가라앉은 수중 도시가 어른어른 그 흔적을 비친다.
넬슨 제독이 프랑스를 공격할 때 선단을 꾸렸던 마르마리스(Marmaris)를 지나며 바다는 지중해에서 에게해로 바뀐다. 그리스 문명을 잉태하고 그리스 신화를 노래한 바다다.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투스가 태어난 보드룸(Bodrum)을 지나 도착한 디딤(Didim)은 신탁의 장소인 아폴로 신전이 있는 곳이다. 120개 되던 돌기둥은 이제 3개 밖에 남지 않았지만 당시 신전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 신전의 대리석 기둥에 쫑긋 세운 귀를 대보았다. 혹시나 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웅~ 웅~’. 깊은 울림만 느껴졌다.
수많은 섬들을 품고 있는 에게해는 이즈미르(Izmir)까지 호수처럼 고요한 모습으로 이방인을 맞았다.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를 쓴 호메로스의 고향 이즈미르는 터키에서 3번째로 큰 도시로 해변의 공원은 자유롭게 연애를 즐기는 청춘들로 뜨거웠다.
이즈미르 남쪽의 에페소(Ephesus)는 지중해와 에게해 투어의 정점. 알렉산더의 휘하 장수 리시마쿠스가 BC 3세기에 세운, 수천년의 역사가 그대로 살아있는 고대도시다. 로마 보다 더 로마답고, 그리스 보다 더 그리스 다운 곳이다. 원형극장만도 귀족용과 서민용 2개를 가지고 있는 거대한 유적이다.
도미티안 황제의 신전을 지나 헤라클레스 문을 나서면 공중목욕탕과 목욕탕의 물을 이용한 고대 수세식 화장실을 만난다. 하드리안 신전과 테라스를 갖춘 귀족 빌라를 지나면 에페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켈수스 도서관. 이날은 도서관 앞에서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현악 3중주의 공연이 펼쳐졌다. 에페소의 찬란한 역사를 노래하고, 지금껏 그 역사가 살아있다는 자부심을 음률에 실어보내고 있었다.
대원형극장 앞 열주가 늘어선 하버 스트리트는 관광객이 적어 호젓하게 역사와의 사색에 빠져들 수 있는 곳이다. 길의 끝에 대형 목욕탕 유적이 있고 그 옆에 성모 마리아의 교회 더블 처치가 있다. 에페소는 예수가 죽은 뒤 사도 요한이 마리아를 모시고 와서 머물렀고, 사도 바울이 은세공업자들로부터 핍박 받았던 대표적인 성지다.
안탈랴ㆍ에페소=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길에서 띄우는 편지/ 터키
터키의 자연을 이야기할 때 카파도키아 만큼 유명한 곳이 파묵칼레(Pamukkale)입니다.
카파도키아의 지형이 바람과 빗물이 만들어낸 것이라면 ‘목화의 성(Cotton Castle)’이란 뜻의 파묵칼레는 동굴의 종유석처럼 온천수의 석회 침전물이 긴 시간 만들어낸 비경입니다. 온천수에 녹아있는 석회 침전물이 가라앉아 저절로 둑을 쌓고, 그 둑을 넘쳐 흐른 물이 또 둑을 쌓으며 층층이 대리석보다 하얀 작은 풀(pool)들이 이어지는 거대한 풍광을 연출하는 곳입니다.
파묵칼레에 도착한 때는 해질녘이었습니다. 고드름처럼 굳어버린 침전층 위로 말간 온천수가 석양의 노을을 담뿍 담고있길 기대했습니다. 물 위로 아스라이 수증기가 피워 오르면 금상첨화겠지요. 하지만 막상 파묵칼레에 올라보니 가슴이 헛헛해지더군요.
나지막하게 나마 물을 담고 있어야 할 석회석 침전 풀 대부분이 바짝 말라있었습니다. 바닥도 가뭄 든 논바닥마냥 갈라져 있고 일부는 누렇게 색이 변하기도 했습니다. 한곳에 물줄기가 졸졸 흐르는 곳이 있어 관광객들은 한정된 구역에서 발이나마 담그며 아쉬움을 삭여야 했습니다. 침전물이 만든 각 풀에서 노천 온천욕을 즐겼다는 것은 이제 먼 이야기가 돼버렸습니다. 1980~90년대 관광객들이 몰릴 때 파묵칼레 정상에 들어섰던 호텔들이 온천수를 마구 뽑아내다 그렇게 됐답니다.
파묵칼레는 고대 도시인 히에라폴리스(Hierapaolis)의 유적을 함께 거느리고 있습니다. 예부터 온천의 효험이 유명했던 이곳에는 아폴로신전이 있었고 로마의 원형극장, 아고라, 떼를 지은 석묘들이 남아있습니다. 물론 그 유적들은 부서지고 시간의 더께로 누렇게 빛바랜 모습입니다.
눈부시게 하얗던 파묵칼레도 이젠 생명을 잃고 그 유적들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섣부른 욕망으로 자연마저 유적이 되고 마는 서글픈 풍경이었습니다.
이성원기자
■ 여행수첩/ 터키
아시아 대륙 서쪽 끝의 터키는 동으로는 이란 아르메니아 그루지아와, 남으로는 이라크 시리아, 서쪽으로는 그리스 불가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수도는 앙카라. 공용어는 터키어를 쓴다.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3.5배 정도로 인구는 7,100만명.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는데 종교적 규율은 상당히 느슨한 편이다. 한국전쟁 참전과 2002 월드컵 이후 한국인을 ‘코렐리’라고 부르며 우호적으로 대한다.
통화는 뉴 화폐는 ‘뉴 터키 리라(YTLㆍ Yeni Turk Liras)’. 최근 환율은 1 YTL이 800~850원가량. 공항이나 호텔, 관광지의 환전소에서 환전할 수 있다. 시차는 한국보다 7시간 늦지만 3월말~10월말은 서머타임을 적용, 6시간 차이가 난다.
서울-이스탄불 직항은 터키항공이 월,목,토요일 일주일에 3번 띄운다. 대한항공도 최근 항공운항권을 얻어 조만간 주3회 정식 취항할 예정. 비행시간은 11~12시간 걸린다. 3개월간은 무비자로 여행할 수 있다.
터키의 음식은 중동 음식의 결정판이다. 비옥한 토양과 함께 강력한 오스만 제국 왕실에서 600년간 계승된 음식문화가 고루 퍼져있다. 대표적 음식은 케밥으로 불에 굽는다는 뜻이다.
우리의 떡갈비 같이 다진 고기를 구워내는 쾨프테(미트볼)도 유명하다. 영화 ‘나니아 연대기’에서 에드먼드가 형제를 배반하면서까지 집착했던 터키젤리(Turkish Delight)는 대표적인 디저트. 찰떡을 씹는듯한 질감에 초콜릿같이 단 음식으로 선물용으로 좋다.
터키 전통주로는 허브를 이용해 만든 라크가 있다. 진과 비슷한 맛으로 허브향이 진하다. 무색인 이 술은 찬물이나 얼음을 만나면 뿌옇게 변해 터키인들은 ‘사자의 젖’이라고 부른다.
터키의 카페트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다른 나라 카페트와 다른 점은 2중 매듭이라는 점. 그만큼 단단하고 촘촘하다. 터키의 카페트 중에서도 헤레케의 것을 최고로 친다.
최근 배낭여행객의 사망 사건으로 터키 여행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높다. 터키 정부는 이번 일을 유감으로 생각하며 관광객 안전 확보를 위해 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하겠다고 밝혔다. 터키 정부는 여행객들도 많은 현금을 가지고 있거나 혼자 외진 곳을 다니지 말고, 과도하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을 경계하고, 히피 스타일의 눈에 띄는 복장을 피하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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