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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자발적 기부와 면제부 헌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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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자발적 기부와 면제부 헌납

입력
2006.04.2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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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사업의 명가 록펠러 가문의 창시자 존 D 록펠러가 처음부터 존경받는 부자였던 것은 아니다. 그가 부를 축적하던 19세기말~20세기 초 미국은‘날강도 귀족’이 판치는, 마크 트웨인의 말을 빌면 “겉과 속이 다른 도금의 시대”였다.

타고난 근면성에다 리베이트와 뇌물을 버무릴 줄 아는 수완은 도금의 시대를 헤쳐가는 산업자본가들 가운데서도 록펠러를 돋보이게 하는 능력이었다.

편법으로 석유사업의 동맥인 철도를 장악하고 정유회사 경쟁자들을 쓰러뜨린 그는 1870년 후반 미국 정유 능력의 95%를 지배하게 됐다. 1982년 40개의 회사를 트러스트로 묶어 독점의 횡포를 부리는 그에게 대중은 당대에 가장 혐오스러운 인물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록펠러가 부만을 좇았다면 이 날강도 귀족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사그러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변신했다. 54세 된 해 병을 얻어 2년 동안 와병한 뒤 1937년 98세로 세상을 등질 때까지 그는 자선 사업가로 제2의 인생을 살았다. 시카고대학 록펠러 의학연구소, 일반교육이사회, 록펠러 재단 등등. 말년에 거액의 재산을 각종 재단에 희사(喜捨)하는 그에게 사람들은 따뜻한 시선을 던졌다.

우리 사회에도 갑자기 재산헌납 바람이 불고 있다. 두 달 전 삼성그룹 이건희 가문이 8,000억원의 사재를 사회에 되돌려준다고 약속하더니 19일 현대ㆍ기아차 그룹 정몽구 가문이 여기에 2,000억원을 더해 1조원대의 주식을 사회복지재단에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8,000억원이든 1조원이든, 두 가문이 내놓은 재산은 기부 문화가 일천한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 때 천문학적 액수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현대의 1조원 출연에는 삼성의 재산헌납 때 지적됐던‘2% 갈증’을 마저 해소하려는 고심이 엿보인다. 그런데도 감동이 없다. 수십년 전 록펠러가 재산을 던졌을 때 쏟아졌을 박수 갈채가 우리 땅에서는 들리지 않는다. 왜 일까.

무엇보다 우리의 기업인들에게서는 기부에 대한 철학을 찾을 수 없다. 록펠러 가문을 통해 흐르는 기부의 참뜻은 자발적 사회 공헌이다. 록펠러는 “신에게서 돈을 버는 재능을 부여 받았기에 더 많은 돈을 주위 사람들에게 명하는 대로 써야 한다”고 말해왔다. 록펠러의 그런 약속에는 사람에 대한 따뜻함이 스며 있었다.

반면 우리의 재벌들은 재산 헌납을 눈앞의 부정을 대속하는 수단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삼성이나 현대 가문 모두 ‘조건 없는’사회 환원을 강조했지만 세상의 눈은 편법적 경영권 승계 시도가 적발된 데 따른 법적ㆍ도덕적 짐을 돈으로 벗어나려는 의도를 놓치지 않는다. 검찰의 사법처리를 목전에 둔 현대자동차 총수 부자의 재산 헌납을 면죄부를 받기 위한 시도와 떼놓아 보기는 어렵다.

기부 정신의 대물림도 간과할 수 없다. 록펠러 기부의 미덕은 당대에 그치는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외아들 록펠러 2세를 자선사업가로 키우는 데 말년의 열정을 쏟았다. 그런 교육을 받은 록펠러 2세는 정재계 및 문화계의 유력 인사로 커감으로써 기부 명가의 전통을 쌓았다. 일회성 기부로 당장의 위기를 돌파하려는 우리의 기업들에게서 쉽게 찾을 수 없는 덕목이다.

기부 문화가 사회를 이끄는 미국과 부의 대물림 전통이 강한 우리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공헌이 결코 법률적ㆍ도덕적 일탈에 대한 사면을 보장받는 길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불변의 원칙이다. 불법과 탈법을 일삼다 문제가 되면 재산을 내놓는 우리의 재벌 가문들은 더 늦기 전에 ‘날강도 귀족’의 변신에 담겨 있는 기부의 참뜻을 깨우쳐야 할 것 같다.

김승일 사회부장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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