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6일(한국시간) 애너하임 에인절스타디움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과의 2라운드 마지막 경기. 한국 대표팀의 선발 투수로 나온 박찬호(33ㆍ샌디에이고)는 일본 강타선을 5이닝 동안 4안타 무실점으로 꽁꽁 묶으며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당시 경기를 지켜본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일본 타자들이 투심 패스트볼과 슬러브 등 박찬호가 구사한 구질을 접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공략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검지와 중지로 공의 4군데 실밥을 모두 가로질러 잡는 포심 패스트볼과 달리, 투심 패스트볼은 검지와 중지를 약간 벌려 2개의 실밥을 나란히 걸쳐 잡는다. 같은 직구지만 잡는 방법을 달리함에 따라 공은 타자 앞에서 빠르게 휘어져 들어간다.
박찬호가 시즌 2번째 선발 등판인 20일 콜로라도전에서 첫 승을 따내는 데 가장 큰 버팀목 노릇을 한 것도 바로 최고 150㎞를 기록한 위력적인 투심 패스트볼이었다. 박찬호는 이날 ‘투수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콜로라도 쿠어스 필드에서 벌어진 원정 경기에서 7이닝 9피안타 2사사구 4탈삼진 4실점(3자책)의 퀄리티 스타트를 펼치며 팀의 13-4 대승을 이끌었다. 올 시즌 한국인 빅리거 투수 가운데 첫 승을 거두며 개인 통산 107승(80패)째를 장식했다. 총 투구수 109개 가운데 스트라이크 69개를 기록했고, 방어율은 5.59에서 4.86으로 낮아졌다.
선발 입지가 불안했던 박찬호나, 전날까지 5승8패로 내셔널리그 서부리그 최하위에 그친 팀으로서나 모두 1승 이상의 의미를 갖는 귀중한 승리였다. 전날 콜로라도와 연장 11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2-3으로 패한 샌디에이고 타선은 1회 4점을 뽑아주며 박찬호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박찬호는 1, 2회 연속으로 1, 3루 위기를 맞았지만 그 때마다 낮게 제구가 된 투심 패스트볼을 앞세워 병살타를 유도, 대량 실점을 모면했다. 박찬호는 5회 1사 만루에서도 후속 타자들을 잇따라 범타로 처리하는 위기 관리 능력을 보였다. 박찬호를 상대로 통산 4홈런 6타점을 기록한 ‘천적’ 토드 헬턴을 포함, 콜로라도 클린업 트리오에게 단 1개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는 놀라운 집중력을 과시했다.
무엇보다 선발 투수로서 제 몫을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게 가장 큰 수확이었다. 박찬호는 지난 5일 애틀랜타전에서 5이닝동안 98개를 던진 데 이어 이날은 7회까지 마운드를 지켰다. 전성기 시절 던졌던 최고 156㎞의 강속구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지만 경기 후반까지 꾸준히 구위를 유지했다.
경기 후 브루스 보치 감독은 “과거 위대한 투수였던 박찬호는 앞으로도 위대한 투수로 남게 될 것”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승택 기자 l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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