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국회에서 국무총리 임명 동의를 받은 한명숙 총리는 헌정 58년 만의 첫 여성 총리다. 한 후보자는 수많은 ‘여성 1호’ 중 최고 권력에 가장 가까이 다가 선 여성이다. 자리가 높은 만큼 그가 여성의 정치사회적 지위를 크게 향상시킬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한 후보자는 지난달 총리에 지명된 직후 일성(一聲) 처럼 이 땅의 딸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 임혁백 고려대 정외과 교수는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는 사실 만으로 뿌리 깊은 가부장주의와 여성의 능력을 낮추어 보는 편견이 상당히 해소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여성계는 국가 정책 결정 과정에 보다 많은 여성이 참여하는 기회가 열려 양성 평등적 시각이 대폭 반영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남성 중심주의에 찌든 정치권에도 새 바람이 불 조짐이다. 특히 정책보다는 권력 다툼이 판치는 정치권의 현실에 무력함을 느낀 여성 정치인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세계적으로 여성 정치 지도자 붐이 일고 있는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여성 총리 탄생은 늦은 감이 있다. 1960년 세계 최초의 여성 총리인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 스리랑카 총리가 나온 뒤 세계적으로 약 40명의 여성이 국가 또는 정부의 수반이 됐다.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영국 수상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이 대표적이다. 핀란드는 타르야 할로넨 대통령과 아넬리 예텐마아키 총리가 모두 여성이다. 물론 이들은 정부와 당을 이끄는 명실상부한 최고 권력자라는 점에서 한 총리와는 입지가 다르다.
우리 사회가 여성 총리를 바라보는 눈이 총리의 국정운영 능력과 자질 보다는 여성 1호라는 상징성에 쏠려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여성 총리는 국정 장악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공공연히 나오기도 한다. 남성이 장악하고 있는 정치권은 여전히 여성 총리, 여성 시장, 여성 당 대표를 선거용 카드로 보는 측면이 강하다. 2002년 DJ 정권 말기 여성인 장상 총리 후보를 내세웠던 것도 레임덕을 극복하기 위한 승부수였다.
하지만 이런 시각 자체가 반(反) 양성 평등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명진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그간의 총리들이 남성이기 때문에 특별히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건 아니다”라며 “21세기는 영웅의 풍모를 지닌 지도자가 필요하거나, 전지전능한 총리 한 사람에 의해 국정 운영 시스템이 돌아가는 시대가 아니다”고 일축했다.
최문선 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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