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수출입 균형을 따져볼 때 ‘역조’란 말을 꺼내기조차 민망한 분야가 문학, 그 중에서도 소설일 것이다. 우리 서점에는 일본 문학 판매대가 도드라지고, 10대 후반 일본 작가의 설익은 작품마저 걸러지지 않은 채 ‘묻지마’ 출간되고 있다.
반면 우리 소설의 상황은 솔직히 참담하다. 지난해 6월 번역 출간된 중견작가 신경숙(辛京淑)씨의 ‘외딴 방’(일본 제목은 ‘離れ部屋’)이나 이문열, 조정래씨 등의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의 대표적 현대 소설들이 아직 제대로 번역되지 않았다.
드라마 영화 음악의 ‘한류’에 반색하고 손뼉 치는 사이, 한층 깊은 심도로 두 나라 사람의 일상적 내면을 전하고 받을 수 있는, 소설은 여전히‘일본발, 한국착’일방통행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의 대표적 책 소개 TV프로그램인 NHK위성2채널 ‘주간 북 리뷰’가 ‘특집’코너에서 신씨를 소개(5월 7일 방영 예정)하는 건 문학 균형 잡기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상징적 움직임이다.
사실 16년 동안 이어 온 이 프로그램 ‘특집’코너에서 한국 작가가 소개되는 건 처음이다. 아시아 전체 작가를 놓고 따져 봐도 ‘붉은 수수밭’의 중국 작가 모옌(莫言)의 10년 전 인터뷰에 이어 두 번째다. 게다가 모옌은 일본 방문 중 출연한 것이어서, 제작진이 해외로 나간 것은 신씨가 처음이다.
일본 제작진이 서울 종로구 평창동 신씨의 자택을 찾은 것은 19일. 이들은 ‘외딴 방’을 제목으로 정한 이유와, 90년대 한국 문학의 변화가 사회 변화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한국인의 가치관 변화에 따른 것인지, 한ㆍ일 양국의 가치관과 세계관의 차이 등을 물었다.
“양국 교류에서의 작가와 문학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신씨는 우선 일본에 있어 한국 문학 소개는 4ㆍ19와 분단 문학에서 멈춘 상태라고 섭섭해 하면서, 우리 문학이 얼마나 자유롭게 다양하게 전개됐는지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신씨는 또 일본의 중견 작가 츠시마 요코(津島佑子)씨와 올해부터 양국의 문예월간지(현대문학, 스바루ㆍすばる)에 서로 편지를 동시 연재하면서 일어나는 두 사람, 마음의 변화를 즐거운 듯 얘기했다.
“나의 삶과 그의 삶, 나의 고향과 그의 고향, 그와 나의 어머니, 두 사회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온다. 편지 글을 전하고 받으면서 정이 들고 서로를 좋아하게 됐다.” 글의 힘, 문학의 힘이란 그런 것이고, 양국의 교류에서 작가와 문학의 몫은 거기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문학으로 서로 접근하는 건 어렵지만, 서로를 훨씬 깊게 알 수 있다. 극적인 과장 없이 현실과 가깝게, 눈에 보이는 현상에서 서로의 깊은 내면으로 따뜻한 시선을 돌리게 되는 계기다.”
이번 방송을 제안ㆍ기획한 NHK 외주제작업체 ‘테무진’의 야마나시 아이코(山梨愛子) 부PD에겐 ‘외딴 방’과 우리 문학에 대한 느낌을 물었다. “지금까지 읽어본 적이 없는 것”이라 했다.
일본이나 미국에선 볼 수 없는 ‘차이’를 느꼈다 했다. 일본 소설이 개인적 관계와 개인적 교감이라면 우리 소설은 역사ㆍ사회와의 대화를 통해 도덕률에서 사랑까지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외딴 방’에선 1970~80년대 고도 경제성장의 그늘진 뒤 켠, 공장에서, “그런 식으로 한국을 지탱했던 어린 여성들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고 놀랐다”고 한다.(이들은 이날 신씨가 일했던 영등포의 공단 지대도 필름에 담아갔다.)
하지만 아직은 한국 소설이 조금 소개됐을 뿐 일반인들은 거의 모르는 형편이란다. 그도 한국 소설에 대해 별 정보가 없어서 혼자 서점에서 “감동을 받은 놀랄 만큼 좋은” ‘외딴 방’을 만났다고 한다.
그는 “좋은 (한국)소설이 나왔는데 별로 주목하지 않으니까 특집으로 꾸며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었다”며 “한국 현대 문학을 알리고, 한일 문화 교류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