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韓류, 한복을 입다' 찾은 정보석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韓류, 한복을 입다' 찾은 정보석

입력
2006.04.20 00:04
0 0

‘사극 배우’라는 특정 카테고리를 별도로 만들 때 거기 포함되는 배우의 외모는 대략 이렇다. 둥글고 선 굵은 얼굴, 크지 않은 키에 다부진 몸매, 쩌렁쩌렁 울리는 낮고 우렁찬 목소리….그동안 임금 역할을 독식해온 유동근, 전광렬, 임호 등의 얼굴을 떠올려보면 ‘주상 전하’ 마스크가 어떤 건지 금세 이해가 된다.

그래서 정보석의 최근 행보는 이채롭다. ‘한국의 제레미 아이언스’로 불러도 좋을 만한 서구적이고 도회적인 외모는 오랫동안 그를 대학강사나 예술가, 고뇌하는 지식인 같은 이지적 캐릭터와 등치시켰고, 사극을 맡더라도 사도세자 같은 문약한 캐릭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그가 5월초 종영하는 MBC 드라마 ‘신돈’에 이어 또 사극을 선택했다. KBS1이 8월부터 방송하는 대하사극 ‘대조영’에서 대조영과 운명적 대결을 펼치는 이해고 역할이다.

“지겨워서 사극은 절대 안 해야지 했는데,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야성적인 캐릭터라 제가 먼저 달려들었어요. 생긴 것 때문에 정돈된 역할이 많이 들어오는데, 아주 거칠고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라 한 눈에 반했죠.” 요즘 사극들의 분위기도 익힐 겸 ‘신돈’ 촬영 중 짬을 내 부인 기민정씨와 함께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분관에서 열리고 있는 ‘韓류, 한복을 입다’ 전시회장을 찾은 정보석은 “대조영과 이해고 중 하고 싶은 역을 고르라고 하면 주저없이 이해고를 골랐을 정도로 거침없는 그 캐릭터에 매료돼 있다”고 했다.

사실 ‘신돈’에서 맡은 공민왕도 그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역할이었다. 200여년에 걸친 무신정권으로 실종된 왕권을 확립시킨 기개와 지략, 권문세도의 부를 빼앗아 백성에게 나눠줄 정도의 기상과 덕망, 고려시대 화가로도 몇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예술적 역량…. 언젠가 공민왕을 다룬 역사극을 만들면 꼭 캐스팅해달라고 막연히 부탁한 적이 있을 정도다.

“4년 전 캐스팅 제안을 받았을 때 꿈이 이뤄지는 기분이었어요. 여러 가지 매력이 있지만 가장 좋았던 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노국공주에 대한 사랑이었죠. 원나라와 대립하면서도 원나라 황족인 아내만은 지켜내잖아요. ‘대조영’의 이해고도 사랑 때문에 인생 전체를 포기할 줄 안다는 점에선 공민왕 같은 매력이 있어요.”

그의 나이 어느덧 40대 중반. 큰 아들이 벌써 고2다. ‘사랑타령’ 할 연배는 지난 것 아니냐고 슬쩍 딴죽을 거니 단호한 대답이 돌아온다. “의리잖아요. 남자, 여자를 떠나서 그건 의리예요.

‘너만 사랑하겠다’는 약속을 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죠.” 대학 4학년 때 신입생으로 들어온 아내를 ‘꼬셔’ 20여년째 의리를 지키고 있는 정보석은 한복전시회장의 소품들에 정신을 뺏긴 아내를 먼발치서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제 삶의 방식이 그래요. 출연작을 결정할 때도 작품 자체보다는 의리가 앞서죠. 아무리 하기 힘든 역도 누가 정말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제가 하게 돼요.”

그런 그의 ‘의리인생’에 영화는 뼈아프게 남아 있다. 한국 영화가 침체기였던 1990년대 초반까지 ‘그후로도 오랫동안’ ‘젊은 날의 초상’ ‘걸어서 하늘까지’ 등으로 한국영화의 버팀목 구실을 했던 그는 1993년 학교 선배인 당시 KBS 드라마국장의 간곡한 청에 못 이겨 1년 짜리 일일드라마에 발이 묶이면서 영화계와 껄끄러워졌다.

“당시 제작되는 한국영화 70~80편 중 40여편의 시나리오가 저한테 오던 시절이었어요. 배우가 없었죠. 그때 제가 드라마를 한다고 하니까 다들 ‘니가 잘 되나 보자’고 욕을 했어요. 저 혼자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그때 이후 영화는 안 들어오더라구요.”

또래의 배우들에 비해 젊은 여배우들과 자주 호흡을 맞추는 그는 극중에서도 실제보다 훨씬 젊은 나이로 나온다. ‘인어아가씨’에서는 스물아홉살짜리 마마보이였고, ‘신돈’의 파트너 서지혜는 그가 배우로 데뷔한 1984년에 태어났다.

“전 양심적으로 했는데 억울합니다.(웃음) 제가 아직도 젊은 파트너와 사랑 연기를 하는 데 대해 불만을 가지신 분들은 5월 중순 시작하는 SBS 금요드라마 ‘나도야 간다’를 보세요. 제가 드디어 마흔살의 대학교수로 나옵니다. 불만을 아주 일거에 해소해 드릴 게요.”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