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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살아있는 비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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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살아있는 비너스'

입력
2006.04.20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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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디 하나 부족함이 없어 뵈는 사람이라도 몇 %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부족함을 메우려는 노력이 개인의 발전을 촉발하고 인류의 지평을 넓히는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자족(自足)의 미덕을 터득치 못함으로써 삶의 상당 부분은 불행의 그늘에 머물고 만다.

부족함 투성이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 부족함에서 자족의 길을 찾아 숨은 능력을 발휘하며 행복한 삶을 만들어내는 경우를 종종 본다. 구족(口足)화가들은 일반인의 눈으로 보면 부족함 투성이지만 그들의 삶은 멀쩡한 사람보다 치열하고 행복의 강도도 진하다.

■ 구족화가들이 예술가로 대우 받은 역사는 길지 않다. 이들은 단지 호기심의 대상이나 생계 유지를 위해 자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로만 여겨졌었다. 상당수가 화가로서의 탁월한 재능을 입증했지만 신체적 장애가 이들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데 장애가 되었다.

소아마비를 앓아 팔을 못 쓰는 에릭 스테크만(독일ㆍ사망)이 같은 처지의 장애인들과 함께 1956년 세계구족화가협회(AMFPA: Association of Mouth and Foot Painting Artists)를 결성하면서 이들은 예술가로서 자립의 길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

■ 현재 60개국에서 700여명의 구족화가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AMFPA는 전시회 개최나 카드 제작으로 재정적 도움을 주는 자립공동협력체로 자리잡았다. 90년에 한국지부가 결성됐는데 회원은 22명이다.

올 2월 발표된 정부의 제5회 ‘21세기를 이끌 우수 인재상’ 수상자에 구족화가 박 정씨가 포함되는 등 사회의 관심이 없진 않지만 비장애 예술가와 다르게 보는 시선은 여전하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장애를 극복, 예술가의 길에 들어섰음에도 장애 비장애를 구별하는 사회의 시선이 이들을 괴롭혀 왔다.

■ ‘살아 있는 비너스’로 알려진 화가 겸 사진작가 앨리슨 래퍼(영국ㆍ41)가 23일 방한한다. 단지증(短肢症)을 안고 태어나 보호시설에서 자란 래퍼는 뒤늦게 예술가의 길로 들어섰다.

래퍼를 소재로 한 마크 퀸의 조각 ‘임신한 앨리슨 래퍼’로 그녀는 ‘살아 있는 비너스’로 다시 태어났다. 파주 영어마을에서 강연을 하고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전시회도 연다. 하인스 워드의 방한이 혼혈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기여했듯 래퍼의 방한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오늘이 장애인의 날이다.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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