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ㆍ기아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19일 경영권 승계의 핵심 고리인 글로비스 주식을 사회에 헌납키로 함에 따라 정 사장의 경영권 승계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현대ㆍ기아차그룹의 물류 계열사인 글로비스는 그 동안 정 사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자금줄’ 역할을 해왔다. 당초 정 사장은 글로비스 상장과 주식 매각 등을 통해 실탄을 마련한 뒤 기아차 주식을 매집, 그룹 지배권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해왔다.
그룹은 현대모비스가 현대차의 지분 14.56%, 현대차가 기아차 지분의 38.67%, 기아차가 현대모비스 지분의 18.15%를 각각 보유하고 있는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현대차나 기아차, 현대모비스 중 1개 회사의 지분만 다량 보유해도 현대ㆍ기아차그룹 전체를 장악할 수 있다.
정 회장은 이중 현대모비스와 현대차의 지분 7.9%, 5.2%를 각각 보유, 그룹 전체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반면 정 사장은 기아차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세 회사의 주식 중 주가가 가장 낮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 사장은 지난해 2월 현대캐피탈로부터 기아차 주식 350만주(1.01%)를 매집한 데 이어 같은 해 11월 다시 현대캐피탈로부터 340만4,500주(0.98%)를 사들여 현재 1.99%의 지분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아직 현대ㆍ기아차그룹의 후계자로 인정받기에는 보유 지분이 턱없이 낮은 만큼 기아차 지분을 추가 매집해야 한다. 정 사장은 기아차 추가 지분 매입에 사용할 자금을 글로비스 상장을 통한 지분 매각으로 마련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날 글로비스 주식을 사회에 헌납키로 함에 따라 이 같은 ‘원대한 계획’은 상당한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재계 일각에선 건설사인 엠코와 광고사인 이노션 등 정 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비상장 계열사를 글로비스와 같은 방법으로 상장시켜 자금을 마련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 방식은 엄청난 역풍에 휘말릴 수 있어 실현 가능성은 적다.
이 때문에 결국 정 회장 부자는 정공법을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정당한 세금을 내고 정 회장이 보유 지분을 정 사장에게 물려주는 방법이다. 이 경우 증여세가 50%에 달해 정 사장이 따로 돈을 마련하지 않는 한 증여받은 지분의 절반을 세금 납부를 위해 다시 처분해야 한다.
또 다른 방안은 LG그룹처럼 지주회사 체제로 가는 것이다. 순환출자구조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불식시키면서 경영권 승계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계열사끼리 상호 출자 지분을 서로 맞바꾸거나 되사는 등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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