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뒷심’이 없어졌다. 경기가 살아나는가 싶으면 이내 꺾이고, 겨우 올라가는가 싶으면 곧바로 내리막길이 기다린다. 경기를 끌고 가는 힘도 약하고, 밀어주는 힘도 약한 ‘지구력의 한계’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냄비경기?
18일 각 연구기관에 따르면 고유가와 환율하락 등 경제여건 악화로 수출이 둔화하고 내수회복이 더뎌지면서 현 경기상승국면은 연말, 사정이 나쁘면 상반기조차 버티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내년이후 하강국면에 돌입할 것을 우려했다. 이렇게 되면 작년 4월부터 시작된 경기상승세는 1년 남짓, 길어도 20개월을 넘기지 못하게 된다.
과거 국내경기는 일단 상승궤도에 진입하면 2~3년은 지속됐다. 1972년 이후 환란 전까지 6차례의 사이클(확장→수축)이 반복되는 동안 경기상승기간은 평균 34개월이었다. 짧게는 23개월도 있었지만, 길게는 44개월간 이어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엔 모든 것이 달라졌다. 98년8월 바닥을 친 뒤 IT붐과 코스닥 열풍을 타고 고속질주했던 경기는 거품이 실체를 드러내면서 2000년8월을 정점으로 24개월 만에 내리막길로 돌아섰다. 이후 신용카드 길거리모집과 부동산 담보대출확대 등 DJ정부의 필사적인 경기부양책으로 2001년7월부터 경기는 다시 확장궤도에 진입했지만, ‘신용거품’이 만든 호황은 결국 17개월(2002년12월)만에 조기 폐막됐다.
경기상승의 ‘단막극화’는 2003년 이후 더욱 심해졌다. 정보기술(IT) 수출 호조 속에 2003년7월부터 경기는 회복탄력을 받았지만, 신용대란에 의한 소비위축을 견디지 못한 채 겨우 7개월 만에 미끄럼을 타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일시적 ‘더블 딥(회복후 재침체)’으로 볼 지, 하나의 경기사이클로 봐야 할지는 논란이 있지만 경기의 ‘뒷심 부족’현상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해 4월부터 시작된 현 회복국면 역시 패턴이 마찬가지다. 재경부는 “수출과 내수가 동반견인하고 있는 만큼 2003~2004년의 더블 딥과는 사정이 다르다”고 밝혔지만, 연구기관들은 ‘연내 정점 도래’확률을 높게 보고 있다. 24개월, 17개월, 7개월에 이어 ‘상승잔치’는 이번에도 15~20개월 만에 끝나게 된다는 얘기다.
왜 짧아졌나
전문가들은 일단 경제의 IT화를 일차적 원인으로 꼽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송태정 연구위원은 “반도체에서 알 수 있듯이 IT제품은 기술개발과 제품생명속도가 빨라 경기등락도 심하다”며 “우리나라 경제에서 IT비중이 급격히 높아짐에 따라 전체 경기가 IT경기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됐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범식 연구원은 “요즘 기업들은 그때그때 수급에 맞게 생산량을 조절하기 때문에 과거처럼 재고를 쌓아두지 않는다. 재고비중이 작아졌다는 것은 경기변동에 대한 조절 및 완충기능이 작아졌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론 정책의 실패, 경제의 면역력 저하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2001~2002년 당시 신용거품 같은 인위적 부양책을 쓰지 않았다면 경기상승세는 완만한 대신 비교적 오래 지속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점에서 응급처방(경기부양책)은 거부하는 현 정부의 거시정책기조는 기본적으로 옳지만 소비와 투자가 일시적 아닌 구조적 한계에 봉착하고 대외의존도만 계속 높아지면서, 경제 자체가 스스로 언덕을 오르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평가다. ‘뒷심’을 낼 동력이 없다는 얘기다. 송태정 위원은 “서비스산업 등 내수 뒷받침이 있어야 경기변동에 완충역할을 해주는데 우리경제는 그 부분이 근본적으로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이성철 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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