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드디어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그룹 회장 부자(父子)를 벼랑 끝으로 몰았다.
18일 정 회장의 심복 중의 심복이라는 김동진 부회장을 소환 조사한 검찰은 “이제 정 회장 부자를 제외하고는 조사를 모두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정 회장 부자의 자백을 끌어내기 위한 진술과 증거들을 충분히 확보했다고 밝힌 셈이다. 검찰은 17일에도 “정 회장 부자가 혐의를 부인해도 사법처리할 방침”이라며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도대체 검찰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상대를 압박하기 위한 엄포용일 수도 있지만 검찰의 발 빠른 수사과정을 되새겨 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검찰은 앞서 현대차 본사와 글로비스에 대한 기습적인 압수수색을 통해 손쉽게 증거 수집을 마쳤다.
비자금 조성 경위와 ‘윗선’의 지시 여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한 검찰은 이후 속전속결식으로 수사를 해나갔다. ‘금고지기’인 이주은 글로비스 사장을 구속했고 이정대 재경본부장과 김승년 구매총괄본부장도 체포했다.
채양기 기획총괄본부장과 전임자인 정순원 로템 부회장, 이일장ㆍ주영섭 현대오토넷 전ㆍ현직 사장도 연일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정 회장의 핵심 측근들을 조사하는 데 불과 3주일이 걸렸다. 검찰이 확실한 물증을 제시하자 이들도 무작정 ‘모르쇠’로 일관하지 못하고 혐의를 시인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들의 사법처리를 조사 마무리 시점으로 유보한 데에도 검찰의 계산이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정 회장 부자를 제외한 핵심 측근들을 차례대로 조사하면서 수뇌부에 대해 결단을 촉구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정 회장 등의 진술 태도에 그룹 임원들의 처벌 수위를 연동해서 처리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검찰이 정 회장의 귀국을 하루 앞두고 김 부회장을 소환한 것도 정 회장 부자를 압박하기 위한 전술적인 측면이 강해 보인다. 정 회장 부자가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사실을 부인하면 총수 일가는 책임을 면하고 임원진만 대거 구속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17일 중국으로 출국하며 비자금 조성 및 부채탕감 로비 의혹에 대해 “도대체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검찰에 출석하더라도 혐의를 순순히 인정하지 않을 것임을 엿보게 한다.
정 회장 부자 소환에 앞서 김 부회장을 부른 것은 대선자금 수사 당시 경험도 작용한 것 같다. 검찰은 2004년 대선자금 수사 당시 현대차의 ‘100억원 차떼기’ 사실을 확인하고도 김 부회장이 ‘총대’를 메는 바람에 정 회장을 사법처리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엔 총수 일가를 대신해 측근이 책임을 지는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한다는 게 검찰의 의지이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회사를 이용한 부의 축적과 이전이 적법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의지가 과연 실현될지 두고 볼 일이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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