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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버릇없는 후배의 속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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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버릇없는 후배의 속죄

입력
2006.04.19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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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한국영화계의 큰 별이 졌다. 신상옥 감독(1926~2006). 100년에 가까운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영화계의 전설인 고인의 장례식에 문상 온 젊은 영화인들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기저기서 쓴 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국민배우 안성기씨는 “영화계에서 어른들과 현역 사이의 중간 위치인 내가 후배들에게 참석을 독려하고 다 함께 해야 하는 일임을 알려줬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자책하기도 했다.

● 신감독 빈소에 젊은 영화인 안보여

부끄럽지만 현역에 젊은 축에 속하는 영화인인 나 역시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중간 위치’인 안성기씨의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발뺌할 뻔뻔함도 갖추지 못했으니 욕을 먹어도 싸다. 요즘 영화인들의 최대 현안은 스크린쿼터 축소 철회와 한미 FTA 반대인데, 이런 불경스러운 사태 때문에 시국과 관련한 영화계의 목소리의 진실성마저 훼손되는 듯해 안타깝다.

여담이지만 야구를 좋아하는 나는 얼마 전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서 ‘박찬호와 선동열 누가 더 훌륭한가?’라는 주제를 놓고 네티즌과 댓글 싸움을 벌인 적이 있다. 선동열의 선수 시절을 보지 못한 10대 네티즌을 상대로 선동열의 위대함을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신상옥 감독의 부음이 전해지자, 주위의 20대 친구 하나가 내게 물었다. 신상옥 감독이 그렇게 위대한 감독이었느냐고.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하는 나에게 그는 다시 물었다. “박찬욱, 강제규 감독보다 더요?” 그 우문에 나는 현답을 내놓지 못했다.

나는 그를 위대한 선배 감독으로 공식적인 존경을 표하지만, 정작 고인의 영화를 제대로 한 편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빨간마후라’ 정도는 EBS에서 봤던 것 같은데 처음부터 끝까지 본 것은 아니었다. 몇 년 전 부산영화제에서도, 애먼 외국영화 찾아보느라 바빴지 같은 시기에 열렸던 고인의 회고전 한 번 들를 생각을 못했다.

얼굴도 모르는 어린 네티즌에게 선동열의 위대함을 설파하다 지쳐 나가떨어진 뒤, ‘요즘 어린것들은 세상을 너무 몰라’ 하고 쯧쯧거리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박찬호보다 선동열이 훌륭했다는 논리로 무장할 수는 있었지만, 신상옥 감독이 현역 어떤 감독보다 앞서갔던 분이었다는 논거를 제시할 수 없는 함량미달의 영화인이었던 것이다.

●이제라도 고인의 작품 찾아 보려…

늦었지만, 이제라도 고인의 작품들을 찾아서 보려 한다. 1960년대 한국영화 전성기의 필름들의 상당수가 흔적도 찾을 수 없다는 부끄러운 현실을 탓하는 것은 올바른 변명이 아니다. 이미 영상자료원에서는 지난날의 한국영화들을 찾고 복원하는 노력을 시작한 지 몇 해 됐다.

머리로만 존경했던 위대한 선구자 감독님을 가슴으로 존경할 수 있게 될 때, 문상가지 못한 버릇없는 후배들의 진정한 속죄는 시작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현석ㆍ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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