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우리 정부의 격한 반발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동해의 우리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대한 수로측정을 강행한 배경은 무엇일까.
일본은 공식적으론 한국 정부가 6월21일 열리는 국제수로기구(IHO) 해저지명소위원회에서 독도 인근 해저지명을 한국 명칭으로 변경하려는데 대한 대응이라고 밝혔다.
일본 외무성 야치 쇼타로 차관은 17일 “일본은 과거 30년간 양국의 EEZ 주장이 중첩되는 수역에 대해 조사하지 않았는데 한국은 적어도 최근 4년간 일본측 항의에도 불구하고 조사를 해왔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 “해저지명소위에서 한국명칭을 등록하는 방안을 추진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엄연히 우리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정당한 행동”이라고 정면 반박하고 있다. 일본이 이미 우리가 해저에 관심을 갖기도 전인 1978년부터 동해 해저지형, 심지어 우리 EEZ내의 해저지형에까지 일본명칭을 붙여 국제기구에 등록해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울릉도와 독도 남측에서 강원도 앞바다에 이르는 수심 1,000~2,000㎙의 울릉분지. 일본은 이를‘쓰시마(對馬)분지’로 IHO에 등록했다.
이는 명백히 우리 EEZ내의 해저지형으로 일본이 우리 동의도 없이 해저자원 협상, EEZ획정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선점하려는 의도가 명백했다는 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때문에 정부는 이에 맞서 지난해 11월 이 지역을 울릉분지로 명명하고 이 밖의 동해 일대 17곳의 해저 산과 분지에 한국 이름을 붙여 공포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일본이 단순히 우리의 해저지형 명칭 등록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이번 사태를 저지른 것으로 보진 않는다.
수로측정을 문제 삼으려면 우리가 울릉도 인근 해역에서 96년부터 2000년까지 4차례 해저지형을 탐사했을 때는 일본이 가만 있다가 6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공론화하겠느냐는 것이다. 또 EEZ가 중첩되는 수역에 대해 30년 동안 조사치 않았다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서도 우리가 조사한 해역은 명백히 우리 EEZ내로 일본이 관여할 사안이 아니라고 못박았다.
따라서 일본의 수로측정 계획은 훨씬 복잡한 정략이 깔려 있다는 관측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일본 보수파들이 이미 최악의 상황인 한일관계를 감안, 9월 자민당 신임총재 선거를 위한 세력 결집을 위해 독도문제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본이 제시한 수로측정 해역범위에 비록 독도가 제외돼 있지만, 양국간 EEZ경계선을 둘러싼 갈등이 첨예화할 경우 독도는 자연스레 논쟁의 중심으로 부각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다는 지적이다.
권혁범 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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