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보고 전화 몇 통 했다고 전화요금이 이렇게 나오다니….”
초등학교 3학년 준영(9)군 엄마 최모(37)씨는 올해 초 날아든 전화요금 청구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평소 3만원 남짓하던 전화요금이 무려 10만원이나 나왔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해보니 음성정보(ARS) 이용료로 나간 액수가 무려 8만원. 준영군이 즐겨보는 모 케이블TV 만화 채널의 ‘명탐정 루나’ 방영 후 이어지는 ARS 경품 이벤트를 20여회 이용한 대금이었다.
최씨는 “아이들을 상대로 이렇게 돈을 벌어가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앞으로 케이블TV 방송사가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이용해 수익을 올리는 ‘얌체 상혼’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서울 혜화경찰서는 18일 이런 식으로 1년 여에 걸쳐 7억원의 돈을 챙긴 모 케이블TV 방송국 총괄국장 이모(37)씨와 편성팀장 이모(35)씨를 준사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회사 만화영화 채널은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1년 여간 ‘명탐정 루나’ 시리즈를 내보내면서 매회가 끝날 때 마다 방송 내용과 관련된 2분30초짜리 ARS 퀴즈를 냈다.
이 ARS 서비스 이용료는 30초당 무려 200원. 일반 유선전화 요금이 30초당 6.5원인 것을 생각하면 30배나 비싼 셈이다.
경찰 관계자는 “판단 능력이 모자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무분별하게 ARS 서비스를 이용토록 해 폭리를 취했다는 점이 문제”라며 “특히 대부분의 ARS 퀴즈가 경품을 주는 것과 달리 이 채널의 경우에는 (경품 없이) ARS 이용료만 챙긴 정황이 있다”라고 밝혔다. 따라서 사실상 사기 혐의가 있다는 것이 경찰 측의 설명이다.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ARS 서비스를 이용하게 해 수익을 올리는 사업 모델은 케이블TV 등 방송업계에 널리 확산되어 있다.
이로 인해 어린 자녀를 둔 가정의 피해 사례가 잇따르자 2004년 10월 방송위원회가 어린이를 주시청 대상으로 하는 방송프로그램에서는 유료정보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방송심의규정(55조)을 개정하기도 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채널은 당시 방송위로부터 시정권고조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ARS 영업을 계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는 “인터넷 게임 등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기업들의 영업 행위가 빈번해 이로 인한 학부모들의 민원도 잦다”며 “이번 사건이 검찰 기소와 법원의 유죄 판결로 이어질 경우 관련업계에 미칠 파장이 상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철환 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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