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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닐 아드미라리!

입력
2006.04.19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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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아드미라리(Nil Admirari). ‘수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가 철학적 노력의 최고 목표로 삼은 ‘쉽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의 라틴어 번역이다. 희로애락의 감정을 쉬이 드러내지 않고, 드러내더라도 절도가 있어야 한다는 중용(中庸)의 가르침과 정확히 닿아 있다.

요즘말로 하면 세상 일에 촐싹거리지 말라는 뜻이다. 여기에 ‘온이려, 위이불맹(溫而厲, 威而不猛; 온화한 가운데 위엄이 있고, 위엄이 있으되 사납지 않다)’이라는 논어의 가르침을 덧붙이면 지금도 얼마든지 개인과 집단이 지향할 기본 자세로 삼을 만하다.

●바보들의 합창 군불 때기

쉽게 화를 내고, 쉽게 기뻐하는 것은 바보들의 짓이라거나,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도 다를 바 없다. 공자는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고, 맨몸으로 대하를 건너는 인간과는 어울리지 않겠다’고 했다. 바보, 특히 용감한 바보를 그만큼 경계했다.

독도 인근 수역에 대한 일본의 수로측량 계획을 두고 나라가 시끄럽다. 각종 시민단체가 본격적 독도 유인도화 등 저마다의 대책을 외치고, 인터넷은 네티즌의 비분강개로 들끓는다. 입으로는 저마다 “독도 영유권 문제를 부각하려는 일본의 속셈에 말려들어 가서는 안 된다”고 떠들면서도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목청껏 외치는 것이 꼭 바보들의 합창같다. 국민감정이야 그럴 수 있다. 독도 주변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듣는데 어떻게 항심(恒心)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이틀 내리 회의를 주재하고, 해양수산부가 때맞춰 독도박물관 건립과 독도견학 확대를 밝힘으로써 국민의 우려와 분노를 확대재생산하는 것은 꼴불견이다. 지난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신(新) 대일 독트린’ 선언과 대통령의 ‘대일 외교 선전포고’를 쏟아냈던 것과 정책적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뜻이야 안쓰럽지만 언제까지 객관적 현실과 동떨어진 선동성 ‘과장 외교’에 매달릴 셈인가.

일본의 이번 움직임을 일련의 의도적 기도로 볼 수는 있다. 어업문제나 배타적 경제수역(EEZ) 획정과 독도 영유권 문제가 형식적으로는 별개라지만 내용상 겹칠 수 있고, 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을 포기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로측량은 명목일 뿐 독도 인근 수역 접근 자체의 상징성이 이번 계획의 목표일 수 있다. 설사 그것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우려하고 대비하는 것이 국가의 임무다.

그렇다고 그런 우려를 미리 드러내 국제사회에 상대방의 속셈을 알아서 선전해 주는 것은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다. 멀쩡한 자기 밭 근처를 욕심 많은 이웃집 사람이 어슬렁거린다고, 동네방네에 “내 밭!”이라고 떠들어 대는 꼴이다. 외교통상부가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분명히 경고했으면, 해수부가 조용히 단계별 지침에 따른 대응태세를 갖추면 그만이다.

아무리 과장하려고 해도 현재 일본과의 독도 마찰은 1950년대의 1차 마찰이나 60ㆍ70년대의 후속 마찰에 비할 바 아니다. 실효적 주권 행사를 통해 서서히 영토 권원(權原)이 굳어져 가고 있다. 국제적 환경도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나아지고 있어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지면 된다.

● 똑똑한 장사꾼 경계해야

정부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분명한 효용성이 드러난 ‘조용한 외교’를 내던지는 것은 달리 뜻한 바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더욱이 한참 읽으면 아무런 알맹이가 없는데도, ‘물리적 충돌’은 물론 ‘무력 충돌 가능성’까지 거론하는 일부 언론의 작태까지도 정부의 뜻에 도움을 주고 있다.

바보들의 합창은 시간이 가면 잦아든다. 정작 큰 문제는 똘똘이 장사꾼들이 이를 이용해 저마다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지식 장사꾼들도 슬슬 장롱 속의 보따리를 다시 챙기고 있다. 이 세 부류의 장사꾼들이 펼칠 난장은 생각만 해도 어지럽다. 그럴수록 닐 아드미라리! 아니, 할(喝)!

황영식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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