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4월의 굴
알림

[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4월의 굴

입력
2006.04.18 00:03
0 0

누군가 말했다. ‘그걸 먹어보려고 제일 처음 시도했던 사람은 얼마나 용감한가!’ 그런가? 굴이 그렇게 흉측하게 생겼나? 딴은 한 번도 굴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굴의 생김새에 대해 듣는다 치니 그렇기도 할 것 같다. 하지만 싱싱한 굴을 맛보고 나면, 굴이 깊은 바다를 응축한 것처럼 생겼다는 걸 깨닫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처음부터 굴이 좋았다. 그 감촉, 그 빛깔, 그 맛, 그 향기!

“이 굴, 날 거로 먹어도 돼요?” 내 물음에 그는 착잡한 표정으로 망설이다가 원망스러운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며 결연히 대답했다. “오늘은 빗물이 묻어서 그냥 먹기에는 안 좋아요.” 나는 “아, 그래요”하며 돌아섰다. 그가 솔직히 대답해 준 것에 보답하는 뜻에서라도 굴을 사야 했던 게 아닌가, 갈등하면서. 익혀먹으면 아주 신선한 굴이 아니어도 괜찮다.

계란을 푼 다음 거기에 잘게 썬 풋고추와 굴을 듬뿍 넣고 굴전을 부쳐도 좋으련만. 하지만 안 사기를 잘 한 것 같다. ‘사 갔더라면 틀림없이 생굴로 먹을 사람인데 제대로 알려줘 팔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하고, 그도 자기 정직에 보람을 느끼고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4월, 생굴의 끝물이다. 열심히 찾아먹자.

시인 황인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