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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윤리 바로세우기 '첫 단추' 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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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윤리 바로세우기 '첫 단추' 꿴다

입력
2006.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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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부가 ‘연구윤리·진실성 확보를 위한 가이드라인’안을 내놓고 13일부터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www.kofst.or.kr), 생물학연구정보센터(www.bric.postech.ac.kr) 등 인터넷 사이트에서 공개적으로 의견수렴을 시작했다.

미국 유럽 일본 등이 1980년대 전후 대형 연구부정 사건을 겪은 후 관련 규정을 마련한 것과 마찬가지로,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논문조작이 남긴 과제다. 관행적으로 여겨져 왔던 저자 끼워넣기나, 실험 기록에 대한 소홀한 관리 등을 바로잡을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인 셈이다.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초안을 잡고 지난달 29일 토론회를 거쳐 수정된 가이드라인의 내용과 의미, 문제점 등을 살펴본다. 가이드라인은 위 사이트 외에 과기부 과학기술네트워크(www.sntnet.or.kr) 사이버공청회에서 볼 수 있고 의견도 낼 수 있다.

●가이드라인은 구속력을 갖는가

우선 법, 시행령 등이 아닌 가이드라인이 과연 법적 구속력을 갖는 것이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시행령, 규칙에 해당하는 보건복지부 규정(CFR)으로서 연구기관이 연구진실성사무국(ORI)과 관련 규정을 의무적으로 만들도록 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은 이 자체로 구속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대통령령인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관리 등에 대한 규정’에 연구기관과 지원기관이 관련 규정과 부서를 설치하라는 조항을 신설하고, 각 연구기관이 각자 규정을 만들게 된다. 즉 가이드라인은 구속력 있는 규정을 만드는 원칙이 되는 셈이다.

●부정을 판정하는 원칙 있나

황 전 교수의 논문 조작에 대한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활동을 예를 들면, DNA 검사 등에 따라 논문 조작을 밝혀내는 일보다 더 어렵고 민감한 문제는, 피조사자(혐의를 의심받는 연구자)가 주장하는 반대 증거를 어떻게 판정하고, 공저자 중 누가 얼마 만큼 책임을 져야 하느냐를 가려내는 일이다.

미국의 보건복지부 규정은 ‘증거우위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즉 증거에 따라 부정혐의가 사실일 개연성이 반대 경우보다 조금이라도 높으면 혐의를 사실로 결론짓는다는 원칙이다.

또한 피고발인이 연구기록을 훼손하거나 제출하지 못하면 부정행위를 입증하는 증거로 삼는다. 유럽의 경우는 과학자에 대한 책임을 더 무겁게 두어, 부정혐의를 벗는 입증 책임을 아예 피조사자에게 두고 있다.

우리나라의 가이드라인은 부정을 입증할 책임을 조사위원회에 두고, 요구자료를 훼손하거나 거부할 경우 내용을 입증할 책임을 피조사자에게 두고 있다.

미국 규정과 비슷하지만, 엇갈리는 증거에 대해 판정 원칙은 명시돼 있지 않다. 가이드라인 제정 연구팀의 일원인 STEPI 박기범 박사는 “무죄추정의 형법 원칙과 상충된다는 법리학자의 지적에 따라 입증책임을 피조사자에게 두거나, 증거우위 원칙을 두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어느 수준에서 부정 혐의를 인정할 것이냐는 각 기관에 달려있는 셈이어서, 기관마다 판정의 엄격함이 달라질 수 있다.

●제재조치 구체적이지 않다?

가이드라인의 가장 큰 문제는 후속 조치에 대한 규정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서울대 의대 의사학교실 김옥주 교수는 “부정에 대한 후속 조치는 기관에 주어진 셈인데, 각 기관의 징계가 과연 적절한지 검증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며 “가이드라인에는 이것이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웰컴재단 연구윤리가이드라인의 경우 자금지원 중단, 논문 취소나 수정 요구, 해당 프로젝트 관련자 교체, 향후 연구 특별관리, 재단의 연구지원참여 제한 등 제재 조치를 명시하고 있다. 미국 보건복지부 규정도 비슷한 제재 조치를 거론하고, “행정처분은 이에 한정하지 않는다”고 덧붙이고 있다.

서울대 징계위원회의 경우 황 전 교수 외 3개월 정직 처분을 받은 다른 공저자에 대한 징계 수위가 논란을 빚었던 것을 고려한다면, 기존의 징계 규정 외에 연구부정과 관련된 징계절차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연구지원기관의 경우에도 연구기관에 대한 관리나 제재뿐 아니라 연구자에 대한 연구비 환수, 정부 연구참여 제한 등 후속 조치가 포함될 필요가 있다.

●부정행위 어떻게 규정되나

가이드라인은 4조에서 부정행위를 위조 변조 표절 외에 공저자 배분과 제보자 위해 행위까지 정의, 미국보다는 다소 넓고 유럽보다는 다소 좁게 규정했다.

위조란 없는 실험결과를 만들어내는 것, 변조란 데이터 일부를 과장하거나 빠뜨리는 것, 표절은 다른 사람의 연구결과나 아이디어를 가로채는 것으로 미국 보건복지부 규정이 통상 이 3가지를 연구부정으로 규정한다.

나아가 연구에 기여한 연구자를 공저자로 넣지 않거나 기여 없는 연구자를 넣는 부당한 공로 배분, 조사를 방해하거나 제보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위까지 부정행위로 규정한 것이다.

특히 연구 기여가 아닌 정치적 판단에 따라 저자 이름을 끼워넣는 痼?황 전 교수의 사이언스 논문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 연구 관행이어서 이를 근절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무엇을 연구 기여로 보느냐는 기준도 예민하고 복잡해 가이드라인보다 구체적인 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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