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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가상 인터뷰-대화] <7> '레임덕 대명사' 제임스 뷰캐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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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가상 인터뷰-대화] <7> '레임덕 대명사' 제임스 뷰캐넌

입력
2006.04.1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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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임덕(lame duck). 1987년 이래로 한국 대통령들이 집권 후반기에 겪게 되는 직업병. 단어의 구성 성분상의 의미는 절름발이 오리이지만 합성어로서는 곤란을 겪고 있어서 도움이 필요한 개인이나 기업을 뜻한다.

‘레임덕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했거나 다른 후임자가 확정되어 있어서 잔여 임기 동안 힘을 잃은 대통령을 뜻한다. 단임제 대통령 제도의 한국 정치에서 ‘분할 정부’의 대통령, 즉 여당이 국회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의 대통령은 아직 후임자가 딱히 확정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집권 후반기에 힘을 잃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국 언론은 ‘임기말 권력 누수’라는 광범위한 의미로 레임덕을 사용한다. 레임덕은 18세기 중반 증권중개소에서는 재정적 의무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속어였다고 한다. 그 이전에, 레임덕은 항해 관련 속어로서 파손된 배를 뜻했다. 절름발이 오리나 파손된 배 모두 물에서 순조롭게 전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증권거래 업자들이 해상보험 업자들과 가까웠기 때문에 이 용어를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860년대 무렵부터 이 말을 정치인들이 쓰기 시작했는데, 오늘날 대표적인 레임덕 대통령으로 간주되는 사람은 15대 대통령 제임스 뷰캐넌(1857~1861년 재임)이다. 그는 무능하고 서툰 판단으로 미국을 남북전쟁으로 내몰았다.

그의 취임 직후 내려진 드레드 스캇 판결에서 노예제도를 선호하는 남부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그가 연방대법원 판사들을 회유했다고 당시 상당수 사람들은 믿었다.

또 그는 노예제도에 찬성하는 사람을 연방대법원 판사에 임명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그는 자신이 재선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함으로써 레임덕을 자초했고, 잔여 임기 동안 남부 주들의 연방 탈퇴를 수수방관했다. 올 초 미국에서는 대통령직을 연구하는 역사가들이 지독한 잘못을 저지른 대통령들을 정하는 투표를 했는데,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힌 사람이 바로 뷰캐넌이었다.

이재현(이하 현): 미스터 프레지던트, 얼마 전 보도에 의하면 일본 외무성은 “노무현 대통령은 레임덕을 피하기 위해 임기중 반일강경론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의 정세분석 자료를 작성했다고 합니다. 송구스러운 말씀입니다만, 레임덕 문제는 미스터 프레지던트께서 가장 잘 아실 것이라 싶어 찾아 뵙게 되었습니다.

Q : 양극화 심화가 뻔한 FTA 조급한 체결은 반대파에 투항 느낌…

A : 미래와의 연정 시도 난 정치적으로 이해 돼 韓美동맹에도 좋고…

뷰캐년: 허허, 괜찮아. 우리 정치인들은 알려지지 않은 채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비난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악명을 떨치는 쪽을 더 선호하지. 아무튼 간에 일본 외무성은 근본적인 판단 착오를 범한 셈이군. 내가 알기로는, 노 대통령에게 있어서 레임덕이라는 것이 최근 현상이 결코 아닌데.

현: 네. 취임 직후부터 미국 정부와 재벌과 관료와 보수 언론은 노 대통령을 공격하고 포위해서 그 지지세력으로부터 떼어놓으면서 그를 절름발이 오리로 만들려고 애써 왔습니다. 급기야 노 대통령은 야당으로부터 탄핵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레임덕 대통령을 구하기 위해 국민들은 촛불 집회를 계속 열었고, 총선에서 대통령과 여당에게 국회의 과반수 의석을 선물했지요. 국민을 위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거지요.

뷰캐년: 그런데?

현: 노 대통령은 총리에게 상당 부분 권한을 넘긴 채 일을 안하고 있다가 갑작스레 대연정을 하자느니 해서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려 버리는가 했더니 이제는 갑자기 양극화 문제와 저출산 및 고령화 문제를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한미FTA를 서둘러 체결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뷰캐넌: 내가 보기에는 총리에게 권한을 위임한 것은 레임덕 대통령이 직접 곧바로 욕먹는 것을 피하기 위한 거야. 연정 제안도 레임덕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고.

현: 한국에서는 이런 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양극화를 진정으로 해결하려면 비정규 관련 악법의 강행 통과를 단념해야 한다”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면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즉시 각종 연금 문제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그런데 왜, 도리어 사회적 양극화를 더욱 악화시킬 게 뻔한 한미FTA를 조급하게 체결하려고 하느냐고 분노하고 있는 것이지요.

뷰캐넌: 취임하면서부터 레임덕에 처한 것은 분명 노 대통령의 잘못은 아니라네. 또, 우리 미국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한미 군사동맹 체제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한미FTA야. 다 좋은 일이지. 미국에도 좋고 한국에도 좋고.

현: 네? 지금 한미FTA를 열성적으로 찬성하는 사회적 세력은 과거에 노무현을 비난하던 보수 우익들입니다. 특히, 노 대통령에 대해 계속 비난을 해 온 보수 일간지들은 이구동성으로 한미FTA를 ‘고무, 찬양, 선동’하고 있습니다. 한미FTA가 체결되면 보수 일간지들이 TV방송국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지요.

뷰캐넌: 자네 말은 노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시작된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적들에게 투항해버렸다는 건데, 정치를 그렇게 너무 간단히 보면 안 되는 법이야.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니까 그렇게 나선 거겠지. 나는 노 대통령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네.

현: 지금 미스터 프레지던트께서는 한국 국민들로서는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뷰캐넌: 한국의 일부 세력은 한미FTA가 1997년 외환위기와 비교해서 열 배쯤 되는 타격을 국민경제에 입힌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치를 하다 보면 국민경제가 혼란에 빠지고 양극화가 심화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야. 부시 취임 이래로 우리 미국의 계층간, 인종간, 지역간 양극화가 아주 심해지기는 했지만,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세기 때문에 우리의 정치, 군사적 요구를 어느 누구도 거부할 수 없어. 새로운 한미 군사동맹 체제를 노 대통령이 받아들인 것도 다 우리의 강력한 힘 때문이야.

현: 레임덕에 처한 한국 대통령들이 선택한 방법은 대개 비슷합니다. ‘강한 정부’를 스스로 표방하거나, 가신들로 인의 장막을 치거나, 사정 기관을 동원하여 소위 ‘군기’를 잡거나, 당 대표직 사퇴 내지는 탈당을 해서 여당과의 관계를 끊거나, 개헌 논의나 통일 문제나 대선 후보에 관련된 논의를 갑작스럽게 꺼내서 정치판을 흔들어대거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엉뚱하게도 자신을 지지했던 모든 국민을 배신함과 동시에 자신을 비난했던 세력에 투항해버리는 방법을 택한 것이죠.

뷰캐넌: 아주 새로운 방책이군. 나도 알았더라면 써먹을 걸 그랬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미FTA는 좋은 거 아냐? 우리 미국과도 마찰을 빚을 일이 없고, 설령 정권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관료들은 같은 정책을 계속 밀고 나가면 되니까 아무 탈이 없는 거고, 또 정권 말기에는 재벌들이 큰 목소리로 저항하고는 했지만 이제는 굳이 나설 필요가 없으니까. 모든 사람에게 잘 된 일이라고 할 수 있네.

현: 하지만 노 대통령을 위해서 새벽부터 열심히 투표장에 가고 또 그를 위해 결사적으로 양초를 낭비했던 국민들로서는 배신감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차라리 이회창씨를 대통령으로 뽑았더라면 지금처럼 억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뷰캐넌: 오호라, 그러고 보니 자네는 지금 한국이 일종의 정치적, 사회적 내전에 돌입하기 직전 상황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로군. 노 대통령이 다수의 국민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는 건데…. 미국의 많은 대통령 중에서도 굳이 나를 불러낸 것도 바로 내가 레임덕 대통령으로서 미국의 내전에 책임이 있어서 그랬다는 거고.

현: 심지어 노 대통령은 남은 2년 동안도 시끄러울 것이라고 자신있게 공언하고 있습니다. 제게는 정치적으로 ‘꽥꽥’ 대는 소리, 그러니까 레임덕의 새된 소리로 들리지만요. 아무튼 이제 전쟁터에 내몰린 한국 국민들 다수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만 합니다.

뷰캐넌: 그렇다고 해서 한미FTA문제를 가지고 장외 집회를 하는 것은 우리 미국으로서는 못마땅한 일이야. 또 그 장외 집회라는 거 말야, 사람들이 ‘들쥐’처럼 몰려다니기나 하고, 그게 뭐야? 아무튼 한미FTA 문제는…그러니까, 굳이 연정이라는 말을 쓰자면, 아무도 제안에 응해주지 않으니까 ‘미래와의 연정’을 시도하고 있는 셈이라고 할 수 있는 건데, 나로서는 상당히 공감이 가는 일이라네.

현: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노 대통령의 연정 파트너라는 미래로서도 노 대통령을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평가할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기를 지지해 준 국민을 배신하고 미국 정부와 가진 사람들 편만을 드는 대통령을 누가 정치 지도자로 인정하겠습니까? 진정한 레임덕은 바로 국민들의 저항이 본격화하는 순간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뷰캐넌: 자, 자, 오늘은 여기까지. 나는 바빠서 이만 일어나야만 해. 부시와 상담을 해줘야 하고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하고도 만나야 하니까. 마지막으로, 한국 국민 여러분, 한미FTA 열심히들 지지해주고 우리 할리우드 영화 많이들 즐겨주시고, 우리 광우병 쇠고기 맛있게들 드세요, 그럼…(휘리릭~)

현: 미스터 프레지던트! 잠깐만요, 미스터 프레지던트, 미스터….

문화비평가 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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