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먹고 살려고 한 짓이지. 좋아서 한 일이고. 그래도 지금 돌아보면 잘 했다 싶지요.”
민요 재담으로 유명한 국악인 김뻑국(본명 김진환ㆍ70)씨는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말한다. 20대 시절 이충선 최경명 이창배 이은관 등 국악인들을 따라 다니며 악기와 소리를 배워 재담꾼의 길로 들어선 그가 25일 저녁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예술인생 45주년 기념공연을 한다.
겸손하고 사람 좋기로 유명한 그가 공연을 한다니까, 이은관 이생강 조통달 황용주 임이조 등 여러 선후배 국악인들이 자진해서 출연을 약속했다.
일본에서 나서 열 살 때 돌아온 그는 우리말을 못한다고 왕따 당하는 게 싫어서 초등학교도 못 마치고 무작정 상경했다. 정처없이 떠돌다가 뚝섬 근처에서 국악인 이충선을 만난 것이 국악 인생의 시작이 됐다.
김뻑국이라는 이름은 1960년대 초 잠시 성우로 활동할 때 뻐꾹새 소리를 잘 내서 얻은 예명이다. 아직 TV가 없고 녹음장비도 변변찮던 그 때, 라디오 프로그램의 온갖 효과음은 사람이 직접 입으로 냈다.
그가 해온 재담은 코미디나 개그에 익숙한 요즘 젊은이들에겐 낯선 것이다. 익살을 섞어 하는 재미있는 이야기이되, 말로만 푸는 만담과 달리 노래로 엮다가 재담을 던진다. 전국의 강과 산에서 각지의 기생과 술타령으로 넘어가는 ‘팔도유람’, 판소리 ‘수궁가’ 중 ‘토끼 화상’ 대목에 여러 지방 민요를 이어붙인 ‘토끼 화상’이 그가 만든 레퍼토리다.
“국악인들이 공연할 때 중간중간 빈 틈을 메꾸는 게 재담가의 몫이었죠. 문화재로 지정된 판소리나 민요 하는 분들은 그거 하나만 해도 되지만 재담가는 그래서는 못 먹고 살아요. 은근히 노래도 하고 재담도 해야 남의 돈을 뺏어먹지. 여러 사람 박수 받는 재미로 해온 거지요. 어쨌거나 무대에 올라가면 밥도 먹고 대우도 받고 하니까.”
1975년 김뻑국예술단을 만들어 20년 간 전국을 샅샅이 돌며 공연을 했다. 공옥진 안비취 김영철 묵계월 이은관 박동진 등 유명 국악인들이 여기에 참여했다. 특히 노인들을 위한 공연에 힘을 쏟았다. 2004년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7개월 간 사비를 털어 종묘 앞 국악정에서 무료공연을 하기도 했다.
“김뻑국예술단의 구호가 뭐냐 하면, ‘뻐꾹새 우는 마을, 가신 뒤에 후회 말고 살아 생전 효도 하자’예요. 5년 전 풍을 맞아 죽었다가 살아났어요. 지금도 왼쪽 팔은 어석어석해요. 오래 드러누웠다가 일어나니까, 노인들을 위해 좋은 일이나 하며 여생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데요.”
글 오미환기자 mhoh@hk.co.kr사진 배우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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