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록 전 인베스투스글로벌 대표가 ㈜진로의 돈을 받은 2003년 무렵은 채권단과 화의 상태였던 진로에게는 기업의 운명이 걸린 시기였다.
진로가 금융권 해결사로 통하던 김씨의 로비 능력에 큰 기대를 걸었을 것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국내 최대 소주업체인 진로는 1997년 외환위기 직전 무리한 계열사 확장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88년 취임한 장진호 전 회장은 사업 다각화를 명분으로 15개였던 계열사를 97년 24개까지 늘렸다.
당시 진로가 계열사에 지원한 자금 규모는 98년 9월 말 기준으로 출자금 1,208억원, 대여금 1조3,262억원, 지급보증 7,482억원으로 모두 2조1,950억원에 달했다. 계열사에 대한 무리한 자금지원과 채무보증이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그룹에 치명타가 된 것이다.
결국 진로는 98년 화의 기업이 됐다. 당시 화의 조건에 따르면 화의 개시 이후 2년간은 채무 원금과 이자에 대한 상환이 유예됐으며 화의 3년째부터 5년째까지는 이자만 상환하고 그 이후 5년간은 원금과 이자를 동시에 상환토록 돼 있었다.
진로는 화의 개시 이후 경영실적이 개선돼 조금씩 회생의 길에 접어드는 듯했으나 2003년 다시 위기를 맞게 된다. 화의조건에 따라 그 해부터는 이자와 함께 원금을 상환해야 했는데 그러기에는 아직 자금여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채권의 70%를 갖고 있던 골드만삭스, JP모건, 모건스탠리 등 해외 투자자본이 진로의 회생보다는 기업 매각을 통한 차익 회수에 더 관심을 갖고 있어 진로의 위기감은 더욱 컸다.
만약 진로가 화의조건을 지키지 못하면 채권단이 법정관리를 신청할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장 회장은 2003년 3월 외자 유치를 하겠다며 채권단에 원금 상환을 6개월간 연장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진로가 김씨에게 손을 내민 것은 이 무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김씨가 진로 채권단을 설득해 회생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명목으로 거액을 받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김씨 로비는 실제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 무렵 진로에 대한 채권단의 채무조정이나 외자유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채권단을 이끌었던 골드만삭스는 2003년 3월 31일 진로가 더 이상 원금을 갚을 수 없다며 채무불이행을 선언하자 4일 뒤 법원에 법정관리 개시 신청을 냈다. 진로는 이후 법정관리 절차를 거쳐 지난해 6월 하이트맥주에 매각됐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김지성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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