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어엿한 미국의 시민권자인 한 친구가 20여년 전 미국-멕시코 국경을 넘던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이 친구는 미국에서 터를 잡겠다는 일념으로 일단 멕시코로 간 뒤 그곳에서 ‘불법으로’국경을 넘는 길을 택했다. 월경(越境)은 생사를 넘나드는 일이었다. 칠흑 같은 밤에 자갈밭을 하염없이 기었고 국경의 철조망과 장벽을 맨손으로 타고 올랐다.
언제 강도로 돌변할지 모르는 멕시코인 국경 브로커 조직에 목숨을 맡긴 채 였다. 들키지 않도록 개조한 농장 트럭의 발판 밑부분에 들어가 멕시코인과 살을 맞대고 짐짝처럼 구겨져 있을 때는 다시 햇빛을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미 당국에 따르면 국경을 넘으려는 한인들의 시도는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의 불법체류자 생활은 그리 길지는 않았다. 1986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의 ‘대사면’조치로 당시 600만명의 불법체류자 중 260여만명이 합법적으로 영주권과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친구는‘기막히게 운좋게’ 이 대열에 합류했고 이후 불법 월경의 기억은 오히려 무용담으로 남을 수 있었다.
한인이 미국에서 살아 남는 현재진행형의 방법으로는 ‘닭 공장’과 ‘떡집’얘기도 있다. 닭 털을 뽑고 부위별로 나누어 포장하는 곳이 닭 공장인데 아무도 하려 들지 않는 궂은 일이라 이 공장에 들어가면 미 당국이 취업비자를 준다. 떡집에서는 한인의 전문성(?)을 인정 받으며 취업비자를 받을 수 있고 근로여건도 나은 편이어서 인기가 좋다. 그래서 한인 운영 떡집은 취업비자 희망자 대기소의 역할을 하면서 사고 팔 때 쏠쏠한 프리미엄이 얹혀진다.
이렇게 해서라도 미국 정착을 원하는 한인들의 이목은 지금 미 의회에 쏠려 있다. 불법이민자 문제가 대사면 이후 20년 만에 다시 전면에 떠올랐고 의회는 친이민파와 반이민파로 나뉘어 격렬한 논쟁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대사면 이후 오히려 늘어나 현재 1,200만명에 육박하는 불법이민자중 한인은 36만~4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200만 한인 사회의 18~20%로 10년 전에 비해 10배 이상 폭증한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 한인 사회가 수만, 수십만명 단위로 미 전역을 휩쓸고 있는 불법이민 규제강화 법안 반대시위 행렬에 동참하는 것은 이해할만하다. 불법행위자 사면불가를 외치는 미 의회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음지의 한인들이 합법적 신분을 얻어 어깨를 펴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하는 것이 동포로서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장래의 한인 불법체류자들이 다시 20년을 기다리면서, 아니면 아무런 기약 없이 법 밖에서 살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눈길은 또 자연히 한국을 향하게 된다. 한국의 정치, 경제, 교육, 그리고 사회가 미국내 한인 불법체류자들을 더 양산 해내는 쪽으로 움직여 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고태성 워싱턴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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