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0여년간 급성장을 거듭해온 한국 자동차 산업에 최근 빨간불이 켜졌다.
급변하는 세계 자동차 시장의 재편 과정에서 한국차가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채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 일본차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점점 멀리 도망가고 있고, 중국차는 가격 경쟁력을 내세우며 한국차에 도전장을 내고 있다.
매년 반복되는 파업과 난치병인 노사 갈등으로 인한 경쟁력 약화는 물론 최근에는 환율 급락으로 인한 채산성 악화가 한국차의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다. 특히 현대ㆍ기아자동차에 대한 검찰 수사까지 겹치면서 한국차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이다. 한국차가 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지 3회에 걸쳐 살펴본다.
“한국이 세계 자동차 시장의 진정한 강자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있습니다.”
최근 A 수입차의 B 부사장은 이렇게 한국 자동차 산업을 진단했다.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인 미국 GM이 휘청거리면서 생긴 시장의 공백을 주로 일본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B 부사장은 “70년대 1, 2차 오일 쇼크를 거치며 연비 좋은 일본 자동차가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크게 확대한 것처럼 이번엔 한국이 도약할 수 있는 차례였다”며 “그러나 지금대로라면 이러한 기회를 놓치게 될 공산이 커 보이며 이는 곧 치명적 위기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자동차공업협회 및 오토모티브뉴스데이터센터에 따르면 일본차의 미국 시장 판매량은 2001년 457만여대에서 지난해엔 547만여대로 4년동안 무려 90만대 증가했다. 반면 한국차는 같은 기간 61만여대에서 73만여대로 12만대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시장 점유율도 일본차는 같은 기간 26.6%에서 32.2%까지 커졌지만 한국차는 3.6%에서 4.3%로 0.7%포인트 느는 데 머물렀다.
일본차의 대표격인 도요타자동차의 1~2월 미국 시장 판매량은 32만대(13.7%)를 돌파, 미국 ‘빅3’ 중 하나인 크라이슬러의 34만대(14.4%)를 바짝 추격했다. 업계에선 도요타가 올해 GM을 제치고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로 발돋움할 것이라는 데에 이의를 달지 않고 있다. 도요타는 올해 전체 생산량이 906만대에 달할 전망이나 지난해 901만대를 생산한 GM은 올해 북미 공장 등을 폐쇄키로 함에 따라 생산량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다른 한편에선 중국차가 무서울 정도의 속도로 한국차를 쫓아오고 있다. 중국 최대 자동차 회사 중 하나로 지난해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상하이자동차는 앞으로 5년간 독자 브랜드 신차 30종을 개발하겠다는 전략이다. 지금까지 외국 업체와의 합작을 통해서 자동차를 생산해 온 중국 자동차 업계가 이제 자신들의 독자 모델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겠다고 선언한 것. 이에 앞서 중국 지리자동차는 1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2006 북미국제모터쇼’에서 중국 업체로는 처음으로 5인승 세단 ‘CK’를 출품, 주목을 받았다.
업계 관계자는 “이런 속도라면 중국 업체들이 대당 1만달러 내외의 승용차를 세계 시장에 내 놓을 날도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이 경우 우리나라 자동차의 경쟁력이 크게 위협받을 뿐 아니라 아예 세계 자동차 시장의 판도가 재편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차의 갈 길은 멀기만 하다. 그러나 노사 갈등의 골은 깊어져만 가고 있다. 파업으로 인한 직접 손실이 현대차만 해도 1987~2005년 무려 9조원에 달할 정도다. 협력업체까지 포함하면 국가적 손실이 2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달도 기아차는 광주공장의 신차 ‘뉴카렌스’ 조립 라인의 투입 인원수를 놓고 대치하다 40일 가량 가동 중단에 따른 생산차질로 300억원의 매출 손실을 봤다.
그러나 가장 위협적인 경영 환경 악화는 환율 하락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ㆍ기아차가 최근 몇 년동안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원ㆍ달러 환율이 1,100~1,200원대로 안정됨에 따라 여기에서 발생한 잉여금을 연구ㆍ개발(R&D)에 투자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환율이 900원대가 되면 현대ㆍ기아차는 수출을 할수록 손해를 보게 돼 생존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자동차는 전ㆍ후방산업연관 효과가 가장 크고, 수출품목1위의 국가대표 산업인 만큼 민ㆍ관ㆍ학계가 힘을 합쳐 위기타개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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