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ㆍ기아차 그룹의 계열사 인수 비리 수사가 산업은행과 금융감독당국으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14일 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 등 2명의 긴급체포는 신호탄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며 금융권 비리를 ‘별도의 가지’로 분류해 철저히 수사할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무더기 사법처리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모럴 해저드의 극치
13일 구속된 김동훈 전 안건회계법인 대표의 영장에서 드러난 현대차 계열사의 부실채무 탕감 수법은 상상을 초월한다. 검찰 표현을 빌리면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다.
현대차 계열사 위아에 대한 1,000억원의 담보채권을 가지고 있던 산업은행은 2002년 자산관리공사에 이 채권을 매각했다. 자산관리공사는 이를 자산유동화증권(ABS)으로 만들어 일반인들에게 팔았다. 그러나 자산관리공사는 얼마 안 돼 매입자들한테서 이를 회수해 산업은행에 다시 넘겼다. 담보가 설정돼 있어 가장 양호한 채권이었는데도 매각과 회수를 거듭하는 과정이 납득하기 어렵다.
산업은행은 이 채권을 다시 공개입찰에 부치는데 그 과정 역시 의혹 투성이다. 구조조정전문회사 신클레어가 795억원에 낙찰을 받았는데 산업은행이 낙찰 가격을 미리 이 회사에 흘려줬고, 이 회사는 7개 회사를 들러리로 세워 낙찰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손실을 본 205억원은 공적자금으로 메워져야 했다. 이 채권은 그 뒤 851억원에 위아로 넘어갔다.
이로써 위아는 불과 4개월 만에 149억원의 채무를 탕감 받은 셈이다. 부실기업은 채권을 다시 매입할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에 구조조정전문회사를 끌어들여 편법으로 부채를 탕감 받은 것이다.
●검찰의 강한 단죄 의지
이 같은 지능적인 수법이 드러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이 “말도 안 되고, 교묘하고, 여러 사람이 관여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어떻게 벌건 대낮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는지 우울하다”고 말할 정도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기관의 손실을 보전해 주기 위해 부실기업 정리 시스템이 도입되고 공적자금이 투입됐는데 이 시스템을 최대한 악용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특히 대기업이 로비자금을 찔러주고 공적자금으로 채무를 탕감 받았다는 점에서 비난의 여지가 크다.
구속된 김동훈씨는 이 과정에서 산업은행과 자산관리공사, 금융당국에 전방위 로비를 한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김씨가 현대차 그룹에서 받은 41억6,000만원 가운데 상당액을 로비자금으로 쓴 것으로 보고 있다. ABS 발행은 금융감독원에 신청해야 하기 때문에 금감원 관계자들도 수사 대상에 올랐다.
검찰은 수사 여력이 없지만 김씨 로비를 다른 한 축으로 설정해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의지를 가다듬었다. 혐의가 드러나면 누구든지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검찰은 “김씨 로비와 관련해 출국 금지한 사람들이 다소 늘었다”고 밝혀 상당수 금융권 인사가 이미 수사망에 걸려들었음을 내비쳤다.
김지성 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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