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통령 선거 때 TV방송에 나갔던 각 후보의 광고물들을 다시 본 적이 있다. 노무현 후보의 광고물들은 재미나 작품성만으로도 요즘 웬만한 상업광고 뺨치는 수작임을 알 수 있다. 기타 치며 노래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정치광고 치고는 파격적인 것이었지만 그럴수록 반응은 더 컸다.
이에 비해 이회창 후보측은 난폭 운전하는 버스가 결국 사고를 낸다거나, 감사원장 국무총리 등의 화려한 이력을 열거하는 화면들을 내보냈지만 감동으로 연결되기는 쉽지 않았다.
후보의 인간적인 이미지를 각인하는 데 감성적인 접근 방법이 이성적인 판단을 구하는 방식보다 효과적이었음은 선거결과로도 나타났다. 아마 선거 결과를 모르는 사람에게 양쪽의 광고들을 보여주더라도 선호도는 같지 않았을까.
단지 광고만 보고 누가 선거에서 이겼을 것 같으냐고 묻는다면 아마 노 후보라는 답이 더 많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상물이 기본적으로 감성의 미디어인 데다 감성으로 소구(訴求)한 쪽은 이미 반 이상을 이기고 들어간 셈이다.
보라바람·녹색바람 '맞바람'
그러나 선거 후 4년이 돼 가는 이 시점에서 이 광고들을 다시 튼다면 어느 쪽 광고가 더 어필할까. 그 간의 갖가지 정치변동과 국정혼란, 경제사정이나 국정지지도 추락 등을 감안하면 당시 이 후보 쪽 광고물들의 호소력은 지금 와서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어떤 이는 “봐라.
대통령 잘 못 뽑으면 이렇게 된다고 저 광고가 말하지 않았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감성의 시계추가 다시 이성을 복원시키는 쪽으로 이동한 탓이다. 감성의 선택이 옳은 결과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난 3년 간의 학습 효과 때문이다.
서울 시장 선거에 다시 감성의 정치가 돌아올 조짐이다. 강금실 전 장관의 보라색 바람과 오세훈 전 의원의 녹색 바람이 순식간에 선거를 감성판으로 몰아간다. 이들은 말로는 정책선거를 다짐하지만 선거, 특히 현대 선거에서 이미지와 감성이라는 무기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알고 있다.
강 전 장관이 색깔과 이벤트로 출마선언을 한 것은 이미지로 승부하겠다는 솔직한 전략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오 전 의원의 인기도가 높은 것도 거의 이미지 덕을 본 것이다. 여당의 이미지 공격에 야당도 이미지 반격을 가해 접전 중인 셈이다.
유권자 투표행위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정당 정책 후보자 등을 들 수 있으나 현대 선거에서 갈수록 유력해지는 것은 후보자 중심의 설명 모델이라고 한다. 선거문화가 미디어 의존형으로 가는 이상, 또 정치가 ‘대중정치’인 이상 불가피한 현상일 것이다. 정책이나 선거공약을 중시한다 해도 개인의 인물 성품 능력 등 이미지 요인을 떠나 따로 작용하기는 어렵다.
강 전 장관이나 오 전 의원이 등장한 후 여론의 호감도는 두 사람을 중심으로 집중돼 나타난다. 여쪽이든 야쪽이든 마치 이들에게서 기다려 오던 무엇인가를 찾았다는 듯 하지만 두 사람에 쏠리는 지지요인은 결국 감성에 관한 속성들이다. 달리 말하면 여야의 기존 후보군은 이유가 어찌 됐든 시대에 부합하는 무엇을 채워주지 못했다는 얘기도 된다.
이미지와 실체, 선택의 추는…
이미지는 실체와 다를 수 있다. 유권자들의 지지 속에는 이 점도 함께 담겨 있을 것이다. 이미지란 ‘내가 그렇다고 믿는 것’이나 ‘내가 머리 속에 그리는 그림’이라는 학자들의 설명처럼 그 유권자들은 ‘내’가 그리 믿고 선택한다는 것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감성의 선택을 판정하고 결과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이성의 몫이자 영역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지난 대선에서 경험했듯 감성정치의 끝은 피눈물”이라고 주장했다는데, 과장과 과격만 제하고 나면 이치와 사례로 틀린 말이 아니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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