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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서양현대사의 블랙박스 나치대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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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서양현대사의 블랙박스 나치대학살

입력
2006.04.15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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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마르 헌법, 바이마르 공화국…바이마르는 20세기 초반 독일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다. 대문호 괴테, 작곡가 리스트, 철학자 니체가 활약한 그곳. 그래서 바이마르를 독일 정신문화의 중심으로, 고전 문학의 메카라고 부른다. 이곳에서 걸어서 한 시간 거리에 부헨발트가 있다. 나치 강제수용소의 원조가 있는 곳.

문명과 야만은 이처럼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등을 맞대고 있다. 역사는 야만에서 문명으로 진보한다고 하지만, 문명이 절정을 이룬 것처럼 보이는 그 순간, 야만이 느닷없이 번뜩이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지옥도를 펴는 역사 또한 적지 않다.

60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을 ‘절멸’한 것으로 추정되는 독일 나치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는, 그 소재의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처절한 악몽에 몸서리치는‘문명화한 야만’의 생생한 예다. 독일 빌레벨트대학에서 막스 베버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독일 인문주의의 전통을 연구하는 저자에게는 인류사에서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운 이 참극이 돌아갈 수도, 피할 수도 없는 험준한 고갯길 같은 문제였다고 한다.

역사 전통에서 비롯된 독일 만의 문제일까, 현대 문명이 낳은 필연적 결과일까, 인간의 마음 속에 도사린 어두운 악마성의 표출일까. 문명의 이기가 집단적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수중에 떨어지면 결국 효율적 살인 수단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저자의 3년 간 고뇌의 결실이다.

저자는 ‘유대인이 얼마나 희생됐을까’‘왜 죽였을까. 유럽에 팽배했던 광신적 반유대주의의 자식인지 아니면 군사적ㆍ경제적 이유가 있는 것인지’ 등 7가지 질문을 던지고 차례차례 연구 성과를 살펴간다.

예를 들면, 저자는 대학살의 주체와 관련해 다니엘 골드하겐이 ‘히틀러의 자발적 집행인들’이라는 책에서 여러 증거를 들어 제기한 ‘평범한 독일인들도 거리낌 없이 동참했다’는 주장이 옳다는 입장에 선다. 지금까지 독일의 대학살 연구는 죄과를 인정하면서도 히틀러와 그 추종자, 즉 나치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많았다. 그런 탓에 골드하겐의 연구는 평범한 독일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고, 이른바 ‘골드하겐 효과’란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한다.

그런데 왜 지금 이 땅의 젊은 학자가 반 세기도 더 전 유럽에서 벌어진 대학살을 새삼 들고 나오는 것일까. 대학살이 진짜니 가짜니, 과장이니 뭐니 하는 논의가 우리 사회에 있기라도 했던가.

저자는 “남의 나라에서 벌어진 그들의 학살이 아니라, 그 인식의 연장선에서 우리 땅에서 벌어진 학살, 최근까지 벌어지는 유럽과 아프리카에서의 학살에 대해 해명하고 고민해 보려 했다”고 한다. 일제의 크고 작은 학살, 한국전쟁을 전후한 민간인 학살, 80년 광주에서의 학살…. 우리 현대사의 ‘중첩된 학살 경험’이 어쩔 수 없이 유대인 대학살로 관심을 돌리게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 사람이 죽었든 100만명이 죽었든, 인종적 이유든 이데올로기나 민족적 적대감 때문이든, 총통의 명령이든 지역사령관의 명령이든 죽음의 본질은 같다고 한다. 저항할 수단이 없는 소수 집단을, 강력한 무장 집단이 일방적으로 살해하는 반인도적 살인 범죄.

“모든 집단 학살의 바탕에는 자기 내부 혹은 자기 가까이에 살면서 자기와 다른 민족에 속하거나 다른 종교를 믿거나 다른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소수 집단을 용인하지 못하고 주변화 하거나 쫓아내 마침내는 절멸시키려 하는 집단적 광기가 도사리고 있다. 차이를 서로 다른 것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결함으로 생각하며, 나아가 결함을 무가치한 것으로 매도하는 독선과 아집이 없다면 학살은 일어나기 어렵다.”

바로 이점에서 독일의 아우슈비츠나 일제시대 제암리 사이에 본질적 차이는 없다. 구 유고슬라비아의 코소보나 아프리카의 르완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중국 난징의 집단학살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유대인 대학살을 통해 그 엄청난 사건을 어떻게 극복해 나갔는가를 배울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아직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우리의 학살 경험들을 정면으로 대면하고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한다. 유대인 대학살이 남의 얘기가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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