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초 리어왕은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냐”고 절규했지만, 21세기에 그 질문은 너무 많은 대답들을 예비하고 있다. 신용카드 사용 내역서, 전자태그, 입학지원서, 학업증명서, 건강진단서, 직업증명서, 숙박예약 확인서, 위치정보시스템(GPS), 신문구독 신청서, 은행계좌, 의료보험….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증빙서류와 기계장치들이 당신의 계급, 당신의 행적, 당신의 취향 등을 낱낱이 까발리며 당신이 누구인가를 말해준다.
권력에 의한 감시와 통제라는 푸코의 주제를 풍부한 사례와 함께 21세기 버전으로 각색한 이 책은 ‘머신토피아, 또는 권력의 비밀에 관한 보고서’라는 부제답게 국가를 위시한 권력층이 첨단 과학기술을 이용해 얼마나 손쉽게 개인을 감시할 수 있게 됐는지를 보여준다.
기술과 결합한 권력은 어두운 중앙에 앉아 전방위의 죄수들을 감시하는 원형감옥 ‘팬옵티콘’의 경비원처럼 시민과 소비자들을 감시하고, 권력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한 피감시자들은 온 몸에 감시 기계를 덕지덕지 붙인 채 권력자들에게 통제당하고 있다.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감시장치는 더 정교해져 나노기술로 만든 기계를 몸 속에 삽입하고,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영혼을 기계에 ‘백업’하려는 시도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맞서 저자는 “권력자만이 기술을 통제하고 정보를 독점할 수 있는 한 기계가 중립적이라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암울한 ‘머신토피아’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강하게 종용한다. ‘빅 브라더’사회에 대한 경고가 더 이상 새로운 주제는 아니지만, 풍부한 사례들과 평이한 문체는 책장을 술술 넘어가게 하는 장점이 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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