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격정만리’를 보러 갔다. 김명곤 문화관광부장관이 쓰고 연출한 작품이다. 국립극장의 수장으로 대학로를 떠나 있던 그에게는 연극 현장으로 돌아오기 위한 제2의 출사표가 될 뻔했으나, 급작스럽게 장관으로 호명되면서 결과적으로는‘장관이 쓰고 연출한’ 연극이 되어 버렸다.
1991년 초연 당시 이 연극은 민족주의 연극인들의 친일 연극 행적, 해방 공간 속 좌우익간의 충돌 와중에 연극인들이 자초한 정치적 오염과 희생 등 연극사의 껄끄러운 문제적 상황을 다루는 데서 긴장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 논란이 상식이 된 지금, 공연은 한국 근대 연극사를 정리한 교과서인 양 성마르고 진부하게 다가올 뿐이다. 어떤 연극은, 현실의 금지된 꿈과 언어가 극장과 함께 공모해야 힘을 받는 것이다.
작가로서 김명곤은 이 작품의 남자 주인공 ‘배우 홍종민’을 통해 그 자신이 이르고자 했던 ‘광대 정신’을 이미 그려냈는지도 모른다. 장관 취임사에서 그는 말했다. “광대(廣大) , 넓고 큰 영혼을 갖고 시대의 고통과 불화에 마주서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온 몸으로 감싸 안고 표현하는 상생의 창조자”라고. 시대와 이념의 희생양이었으나 무엇에도 구속될 수 없었던 자유인 ‘광대 홍종민’의 생애를 조명하는 이 극의 전반부는 상대역이자 아내였던 이월선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이 여주인공 이월선은‘격정만리’의 모험담을 몸소 치러낼 만한 주인공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시대의 한계였을까, 여주인공을 다루는 작가의 시각은 근대 연극의 이식 과정에서 배우가 맞닥뜨렸던 풍속화를 전하기 위해 동원되는 도구로서 쓰이고 있을 뿐이다. 나아가 극 후반부로 가면 여배우 이월선은 시대를 겪는 주체가 아니라 사부곡(思夫曲)을 부르는, 회상을 위한 매개자로 그려질 따름이다.
문학평론가 캐롤린 하일브런은 ‘셰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다면’이라는 저서에서 인간의 전기와 자서전에는‘결혼 플롯’과 ‘탐색 플롯’ 등 두 가지 형태가 있다고 했다. 남성이 주인공은 여러 가지 삶의 가능성을 꿈꾸면서 다양한 역할 모델을 기반으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탐색 플롯’에 따라 살고, 여성은 남자와 결혼하여 아기 낳고 엄마가 되는‘결혼 플롯’에 한정되어 삶을 산다고 한다. 곧 여성의 이야기는 결혼과 함께 끝인 경우가 태반이라는 것이다.
‘격정만리’역시 그 같은 성찰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안에는 너무도 깊이 박힌 가부장적 사고의 틀이 문화의 개별적 생산물을 찍어내고 있음을 확인했을 따름이다.
문화의 날개는 남성성과 여성성이란 두 날개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그 동안 부권적 문화틀이 한국의 문화 정책을 생산해 왔다면, 김명곤 장관은‘격정만리’작업을 통해 훌훌 굿한 듯 고정된 틀을 떠내려 보내길 기대한다. 여성성의 기를 펴게 해주는 ‘살림’의 새 틀로 문화 정책을 펼치기를 기대한다.
연극평론ㆍ극작가 장성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