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문화재 발굴 현장에서 국보급 금불상이 사라진다. 범인은 희대의 도굴꾼 김대출(정재영). 토굴을 판 채 신출귀몰하며 고분을 제 집 드나들 듯 하는 이 남자, 의외의 복병을 만난다.
감히 도굴꾼의 장물을 훔친, 간 큰 범인임이 분명한데도 눈을 껌벅이며 보물의 행방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어린이가 그의 인생 최대의 걸림돌이 될 줄이야. 보물을 되찾기 위해 어르고 추궁도 하던 김대출은 어린 지민(남지현)과 병오(김수호)에게서 인생의 진정한 보물이 무엇인지 조금씩 깨닫게 된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카리스마를 발휘하면서도 동심 앞에서는 꼼짝 못하는 순박함을 동시에 지닌, ‘마이 캡틴 김대출’의 김대출은 배우 정재영의 분신과도 같다. 툭툭 내뱉는 투박한 말투의 불량기와 때론 군내 날 정도로 텁텁한 인간미. 그리고 이 두 가지가 만나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만들어내는 구수한 웃음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이기 때문이다.
“주로 밑바닥 역할을 해왔는데 제 생활 태도가 그들과 많이 비슷하고 연민도 많이 느껴요. 거의 매일 운동복에 슬리퍼 신고 돌아다니고…그게 편해요.”
‘마이 캡틴…’ 출연에도 이런 평소 생각이 작용했다. 집 나간 딸을 대신해 외손녀 지민을 키우는 노인(이도영), 조락한 서커스단의 단원으로 병약한 아들 병오를 돌보는 애란(장서희) 등 영화에는 변두리 인생의 쓸쓸한 사연이 등장한다. 그는 “해맑은 어린이들의 행동을 통해 시답지 않은 인간이 웃음을 되찾게 되는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었다”고 말한다.
지난해 정재영이 얼굴을 내비친 영화는 3편이다. ‘웰컴 투 동막골’ ‘나의 결혼 원정기’ ‘박수칠 때 떠나라’ 등 하나 같이 화제작이거나 흥행작이다. ‘마이 캡틴…’이 20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그는 장진 감독의 일명 전라도 누아르 ‘거룩한 계보’에 출연하고 있다. “너무 다작을 한다”는 지적이 나올만하다. 그러나 그는 다작이 꼭 배우의 역량을 갉아먹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황)정민이가 다작해도 괜찮다는 것을 보여줬잖아요. 출연 편수의 많고 적음 보다는 얼마나 역할을 잘 소화 하느냐가 더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정작 그가 두려워 하는 것은 사투리 연기다. 일반적인 경상도 사투리와 경주 말투의 차이점을 면도날처럼 짚어내며 “성의가 없다” “연기 대충한다”고 힐난하는 네티즌이 무섭지는 않다.
대신 ‘귀여워’를 시작으로 ‘거룩한 계보’까지 내리 여섯 작품을 사투리로 연기해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표준말로 연기하는 방법을 다 까먹었어요. 사투리 안 쓰면 왠지 연기가 밋밋하게 느껴져요. 이러다가 억센 사투리에만 기대어 감정 전달을 하게 될까 두려워요. 다음 작품에서는 절대 사투리 안 쓸 거예요.”
독불이(‘피도 눈물도 없이’), 뭐시기(‘귀여워’), 꾸러기(‘박수칠 때 떠나라’), 동치성(‘아는 여자’ ‘거룩한 계보’), 홍만택(‘나의 결혼 원정기’) 등의 이름으로 세련하고는 한참 거리가 먼 역할을 맡아왔던 그는 연기 영역을 계속 넓혀가야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여전히 다리 꼬고 거드름 피우는 도회적 이미지에 거부감을 느낀다. ‘아는 여자’처럼 ‘웃기는 멜로’라면 모를까 닭살 돋는 진한 사랑 이야기도 반갑지 않다. “내면보다 외면이 멋있는 역할은 자신 없습니다. 저보다 겉 모습이 그럴싸한 꽃미남 들 많잖아요. 저는 그저 내면으로만 승부할 거예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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