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 궁~ 궁~’
징이 세 번 울리자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고 도복을 입은 엄숙한 표정의 수행자가 나타난다. 그가 안내하는 문 안쪽은 또 다른 세상. 한민족의 뿌리라고 하는 환인, 환웅, 단군 등을 모신 신성한 성역 삼성궁(三聖宮)이다.
지리산은 한반도의 어머니산. 웅장한 산은 깊고 너른 품으로 이제껏 민초들의 아픔과 설움을 달래왔다. 전란과 가난으로 쫓겨난 유민들이 찾아 들었고 해방 이후 빨치산들이 다른 세상을 꿈꾸었던 곳이다. 이 산속 깊은 곳에 이상향을 좇는 이들이 찾아 들어 이룬 또 하나의 세상이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의 청학동이고 그 한쪽에 삼성궁이 자리하고 있다. 고운 최치원이 은거했던, 푸른 학이 날아오른다는 신선이 사는 땅이다.
삼성궁은 이곳 출신인 한풀선사(본명 강민주)와 그의 제자들이 단군시대 소도를 복원해놓은 곳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선도(禪道)를 지키며 신선도를 수행하는 도량이다.
삼성궁 주차장에 차를 대고 삼성궁 까지는 약 500m 산길을 올라야 한다. 봄볕 잔뜩 받아 이제 막 신록의 새순이 돋고 있는 오솔길이다. 징 세 번의 초인종으로 문이 열린 삼성궁은 수많은 돌로 이뤄진 거대한 설치예술 작품이다. 산속 갑자기 트인 넓은 공간에 돌담, 돌탑, 돌길 등으로 아기자기하게 수놓은, 잘 꾸며진 정원이나 공원 같았다.
수행자의 설명으로는 이곳의 돌탑들은 하늘과 땅의 기운을 잇는 솟대들이다. 지금까지 쌓은 게 약 3,000여 개 되는데 3만개가 될 때까지 쌓고 또 쌓을 작정이란다. 삼성궁을 돌아보는 코스는 하나. 삼성궁 이곳 저곳을 둘러볼 수 있도록 잘 고안된 ‘배달길’ 팻말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거꾸로 땅에 박힌 한아름 넘는 항아리를 따라가면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건국전이다. 길은 건물 아래 계단을 타고 마당으로 이어지는데 수많은 돌절구, 다듬이돌, 맷돌들로 꾸며진 석축, 돌담의 기학학적 무늬가 시선을 잡아챈다.
마당을 지나 배달길은 ‘아사달’이란 찻집을 거쳐 떼로 솟은 돌탑 무리 속으로 들어간다. 머리통만한 돌에서부터 손톱만한 돌멩이까지 각양각색의 돌들이 서로를 잡아당기며 탑을 이루고 있다. 돌 하나하나에 염원을 담았다면 탑은 그 자체로 신앙이다.
길은 졸졸거리는 도랑을 건너 작은 대나무숲으로 안내한다. 이제 막 푸르러지는 아기 연둣빛의 댓잎이 곱다. 길가 수행자들이 거처하는 곳은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공간. 제주의 민속촌 마냥 대문에는 대나무 두 줄만 가로지르고 있다.
탐방로는 국조전 뒤로 해서 삼성궁의 윗자락 청학루에 이른다. 기품 있어 보이는 팔각 정자다. 이곳에 서면 삼성궁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청학루 아래 담장에 기대고 섰는데 멀리 징소리가 울리고 삼성궁을 찾는 객들이 새로 들어왔다. 수행자의 설명을 듣는 그들의 몸가짐은 조심스러웠고 눈빛은 진지했다. 종교와 믿음을 떠나 거대한 석조 퍼포먼스가 뿜는 장중함에 저절로 자신을 낮추게 만드는 공간이다.
삼성궁에서는 매년 10월 셋째주 토~일요일 1박2일 동안 개천대제를 올린다. 영고의 제천의식을 재현하는 행사로 수행자들의 갈고 닦은 무예 등을 구경할 수 있다.
*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단성IC에서 나오자 마자 우회전, 20번 국도를 타고 중산 방향으로 달린다. 시천을 지나 삼당에서 좌해전 1047번 지방도로를 타고 예치터널, 삼신봉터널을 지나면 청학동이다. 상성궁 관람료는 국립공원 입장료 포함 어른 3,300원(청소년 1,600원, 어린이 1,100원)이다. www.bdsj.or.kr
하동=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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