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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70년대 촬영 826점 기증 노무라 모토유키씨/ "사진 속 청계천 역사, 제 것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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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70년대 촬영 826점 기증 노무라 모토유키씨/ "사진 속 청계천 역사, 제 것 아니지요"

입력
2006.04.1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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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과 서울의 변화가 놀랍다. 우리 마음의 모습도 그만큼 바뀌었을까.”

30여년 만에 청계천의 맑은 물을 바라보는 70대 일본인의 눈동자는 예전 청계천 주변을 가득 메웠던 판잣집들의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분명 이쯤 어딘가 있었을 법한 아낙들의 빨래터, 옹기종기 모여앉아 담배를 나눠 피던 젊은 실업자들, 각종 오물이 벌겋게 드러나 있던 하수도의 모습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병풍처럼 둘러선 콘크리트 건물들과 정원처럼 깔끔하게 꾸며 놓은 개천의 모습이 그에게는 낯설게 느껴진다.

1970년대 청계천 일대에서 빈민 구제 활동을 펼쳤던 일본인 노무라 모토유키(野村基之ㆍ75ㆍ사진)씨. 그는 도쿄수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1968년 선교사 자격으로 한국으로 건너와 7년 남짓한 시간 선교를 겸한 봉사 활동을 펼쳤다. 30여년만에 그가 청계천을 다시 찾은 이유는 서울시에 1960~70년대 청계천변의 모습을 담은 자신의 사진 826점을 기증하기 위해서다.

그는 “청계천 판자촌도 역사이고 기록이므로 개인이 소장하는 건 맞지 않고 당연히 한국에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찾았던 현재 성동구 마장동ㆍ사근동ㆍ용답동ㆍ송정동 일대의 당시 청계천변은 고향을 등지고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온 사람들의 곤궁한 삶이 넘쳐나는 거대한 빈민촌이었다. 노무라 씨가 방한했을 때는 일본인들의 입국 기간이 2주일로 제한될 만큼 한국 내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낯선 일본인 목사의 도움을 의심스러워 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 대한 남모를 ‘책임감’으로 이 땅의 빈민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교토(京都)의 기독교 지식인 집안에서 자라난 그는 당시 식민지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멸시에 시달리던 한국인들의 실정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배급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던 한국인 친구들의 처지에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고 회상했다.

특히 도쿄수의대 재학시절 한국인 유학생 김오남씨와 동고동락했던 추억이 후일 그의 발길을 한국으로 향하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노무라 씨는 “광주대에서 수의학을 가르친다던 그를 만나기 위해 수소문했지만 연락이 닿지 못했다”며 “꼭 한 번 만나 보고 싶다”고 말했다.

노무라 씨가 기증한 사진은 13일부터 23일까지 성동구 마장동 청계천문화관에서 ‘노무라 할아버지의 청계천 이야기’ 전시회를 통해 공개된다.

70대의 나이도 잊은 듯 활기와 유머가 넘치는 그는 “사진이 유일한 취미인데다 당시 마누라의 잔소리를 피해 밖으로만 나돌다 보니 이렇게 많은 사진이 쌓였다”고 익살을 떨었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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