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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식·김동완 목사 '40년 벽을 넘어'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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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식·김동완 목사 '40년 벽을 넘어' 출간

입력
2006.04.14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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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보수, 진보의 갈등은 여전히 심각한 편이다. 많은 나라에서 이념 대결이 종식됐지만, 어찌 된 일인지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한국 교회 역시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 한다. 한 쪽은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로운 나라를 세우자고(사회 정의) 하는 반면, 다른 한 쪽은 하나님의 교회를 확장하고 개인의 구원에 힘쓰자고(복음화) 한다.

김동완 목사는 전자에 속한다. 1970년 전태일 사건을 경험하고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초대 의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사무국장 및 총무 등을 지냈으며 인권, 민주화, 통일 운동에 평생을 보냈다.

반면 김남식 목사는 미국 장로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기독신문’ 편집국장과 주필 등을 지냈으며 지금은 총신대 신학대학원과 일본 고베 신학교에서 강의하는, 보수 진영의 인물이다. 성장 배경과 교파, 신학적 경향, 활동 영역이 다른 두 사람은 예순 넷이라는 나이 말고는 같은 게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리 다를 것도 없어 보인다. 교계에서 만난 동갑끼리 모임을 만들고 한 달에 한 번 식사를 같이 하다 보니 뒤늦게 친구가 됐다.

그러던 어느날 김남식 목사가 암에 걸렸다(지금은 건강을 회복했지만). 그는 함께 탄 기차 안에서 김동완 목사에게 이 사실을 처음 알렸고, 둘은 내친 김에 살아 온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전혀 다른 생각으로 살아온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이제라도 서로를 더 잘 이해해보자는 뜻이었다.

지금 그 뜻은 ‘40년 벽을 넘어’라는 제목의 책으로 형태를 바꿔,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되기를 희망한다(대한기독교서회). ‘보수 신학자와 진보 운동가의 역사 대화’라는 부제가 묘하게 사람을 끈다.

책에서 둘은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우리 역사와 한국 교회에 대해 진지하면서도 열린 자세로 대화를 한다. 김동완 목사는 인권과 민주화, 통일 운동을 하나님이 시킨 일로 받아들였다.

하나님은 평화를 원하기 때문에 자신이 그 일에 나섰다는 것이다. 김남식 목사에게는 민족의 복음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정치나 인권의 문제보다도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선했다.

인권 유린과 강압 통치가 이뤄지던 70, 80년대의 보수 진영에 대해 김동완 목사는 좀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다. “당시 보수 편에서는 정치 지도자를 위한 기도를 해 주었는데 저는 그때 그들의 심정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80년대 한국 교회의 급속한 성장에 대해서는 “숫자 놀음, 예배당 증축, 기도원 건축 등 외적 성장이 있었지만 이웃과 민족의 고난에 동참하는 모습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털어 놓았다.

하지만 김남식 목사의 생각은 달랐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 하게 하시느니라’라는 성경 말씀을 따라 한, 복음화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개인의 축복이었는데 교회가 성장하면 그만큼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둘 다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 교회는 원래 하나인 손등과 손바닥이 결국 두개로 분리되는 아픔을 겪어왔다.”(김남식 목사) “교계 지도자들이 먼저 화합을 얘기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겸허한 모습으로 화해와 일치를 위해 힘써야 한다.”(김동완 목사)

이런 반성을 바탕으로 이들은 이제 하나님의 샬롬(평안 혹은 평강)을 함께 기대하고 있다. 각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개인적 샬롬이라면, 2000년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이를 공동체적 샬롬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 시대에 대비하고 북한 선교를 향한 공동체적 관심이 특히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양극화 등 사회 갈등이 첨예한 지금, 그 무엇보다도 절실한 것이 대화다. 그 동안 우리 사회에 대화가 단절된 것은, 남을 인정하지 않고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와 다르다고 모두 틀린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하며, 그래야 다름을 통해 새로운 일치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의 대화는 우리에게 그 같은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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