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은 제 남편이기 이전에 위대한 감독이셨습니다.”
12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고 신상옥 감독의 평생 반려자이자 영화인의 길을 함께 걸어온 최은희(80)씨의 애절한 사부곡(思夫曲)이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의 마음을 울렸다.
검은 한복 차림으로 빈소를 지키던 최씨는 “(고인은) 워낙 정신력이 강해 ‘불사조’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2년 전 간 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그동안 많이 회복됐는데 이렇게 갑자기 떠날 줄은 몰랐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고인은 11일 오후 6시께 상태가 악화해 중환자실로 들어가면서 최씨의 손을 꼭 잡아주는 것으로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최씨의 질녀인 탤런트 장희진씨는 “이모부께서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직전 이모에게 ‘손 좀 줘봐’ 하시더니 잠시 손을 꼭 잡았다 놓고는 ‘이제 됐어, 가봐’라고 하셨다. 그게 두 분이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였다”고 전했다.
한사코 인터뷰를 거부하다 어렵게 취재진과 자리를 한 최씨는 고인을 “평생 영화밖에 몰랐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술도 못 마시고 담배도 못 피고 도박도 못 하고, 통 노는 거라고는 몰랐던 양반이에요. 춤도 출 줄 몰랐어요. 어느 국제영화제에서 한 여배우가 춤을 추자고 해서 나갔다가 그 배우의 발등을 밟기도 했지요. 이제 여행도 다니며 여생을 즐기자고 했는데, 그렇게 못하고 떠나셨네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성춘향’ 등 고인의 대표작들의 주인공을 도맡았던 최씨는 고인에 대해 “배우를 편하게 해준 감독”이라고 평했다. 그는 “배우를 믿고 배우가 스스로 연기를 해나갈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면서 “스태프들에게도 사사건건 간섭하기보다는 촬영 현장을 교통 정리 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편으로서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영화밖에 몰랐고, 워낙 바빴으니 그럴 수밖에요. 나이 들고는 집안 일을 많이 도왔지만 젊은 시절에는 못 하나 박을 줄도 몰랐어요.”
최씨는 1978년 납북된 뒤 북한에서 재회했을 당시의 감격도 되새겼다. 최씨는 “내가 납북된 지 6개월 만에 남편도 납북됐지만, 5년이 지나서야 만날 수 있었다”면서 “서로 죽은 줄만 알았는데 그렇게 만나니 꿈만 같았다”고 회고했다.
“수년간 시나리오를 손보며 공을 들였던 영화 ‘칭기즈칸’을 만들지 못하고 떠난 게 가장 가슴이 아픕니다.” 최씨에게 고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위대한 감독으로 남았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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