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요코타 메구미씨의 남편이 한국인 납북자 김영남(金英男)씨일 가능성이 높다는 DNA 검사결과를 낭보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주변국의 부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6자회담 등에서 일본인 납치문제를 제기했지만 “개별 국가 간의 문제”라며 외면당해 온 일본 정부는 이번 결과가 그 동안의 상황을 반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DNA검사 작업을 지휘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은 11일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일본 정부의 속내를 그대로 드러냈다. “이번 결과로 납치문제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고 밝힌 그는 앞으로 한국과의 적극적인 공조 관계를 통해 납치자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아베 장관은 DNA 검사 결과를 6자회담 대표가 모두 참가한 도쿄(東京) 동북아시아협력대화(NEACD) 기간에 맞춰 발표하는 등 용의주도함을 보여 일본인 납치문제를 국제사회에 인상적으로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상황 반전은 북일 관계, 남북 관계를 더욱 경색시킬 우려도 있다. 일본 정부는 향후 일본인 납치자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과 납치범 신병인도, 생존자의 귀국 등을 북한에 더욱 강력하게 요구하며 경제제재 등 북한 압박 카드를 실행에 옮길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도쿄의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11일 일본 정부로부터 검사 결과를 전달 받은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일본 정부의 의도가 무엇이냐”며 격분했다고 한다.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부부장도 12일 “일본 정부가 발표 시기를 조정했으면 좋았겠다”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일본인 납치자문제로 일약 국민적인 지도자로 부상한 아베 장관이 비등한 여론을 등에 업고 펼치는 대북 강경책을 제어할 수 있는 일본 국내 분위기가 아니라는 점도 북일 관계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남북 대화를 중시하며 납북자 문제에 거리를 둬 온 한국 정부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일본 정부와 공조해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북한에 의해 각각 납치된 한국인과 일본인이 부부관계를 맺고 살았다는 비극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상황만으로도 납북자 문제에 대한 비판 여론이 뜨거워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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