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왕족 화가로, 속세와 연을 끊고 살아가는 선비(은일고사ㆍ隱逸高士)들에 관한 그림으로 유명한 낙파(駱坡) 이경윤(李慶胤ㆍ1545~1611년)의 진품이 처음으로 확인돼 공개된다.
예술의전당과 경남대는 12일 이경윤의 화첩집 ‘낙파필희(駱坡筆戱)’ 등 98종, 135점의 조선시대 예술품을 공개하는‘데라우치의 보물, 시서화에 깃든 조선의 마음’ 전시회를 25일부터 6월11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연다고 밝혔다. 작품들은 일제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약탈ㆍ수집한 소위‘데라우치 문고’중 일부를 경남대가 96년 돌려받은 것으로, 당시 구체적 연구성과 없이 한차례 공개됐었다.
특히 전시 작품중 눈길을 끄는 것은 낙파필희 중‘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시상에 잠긴다’는 뜻의 연자멱시도(撚자覓詩圖ㆍ사진). 안휘준(安輝濬) 문화재위원회 위원장은 “지금까지 이경윤의 진품은 한 점도 확인되지 않았지만, 연자멱시도에 동시대 사람인 오봉(五峰) 이호민(李好民ㆍ1545~1611년)과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ㆍ1559~1623년)의 찬문이 등장해 진품임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경윤은 조선왕조실록에 ‘선조의 임진왜란 피난길을 수행하지 않은 죄를 물어야 한다’는 대목이 나올 뿐, 행적이 뚜렷하지 않은 인물이다. 하지만 작자가 명확하지 않은 처사(處士)풍 그림 상당수가 그의 이름을 빌어 전해지는 등 회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안 위원장은 “연자멱시도는 흑백 대비가 강하고 도끼로 찍은 듯한 부벽준(斧劈준) 기법이 뚜렷하다는 점에서 조선 중기 유행한 절파화법의 전형”이라며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도 흠잡을 데 없는 수작”이라고 평했다.
안준현 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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