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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옥 감독 별세/ 시대를 한발 앞서간 천부적 이야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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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옥 감독 별세/ 시대를 한발 앞서간 천부적 이야기꾼

입력
2006.04.1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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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대중 예술인이 되기 위해선 대중의 기대를 반보 앞서는 지혜를 갖춰야 한다고 한다. 영화에 대한 욕심을 삶의 원동력으로 삼았던 고 신상옥 감독은 반보의 지혜라는 축복을 받은 몇 안 되는 예술인 중 한 명이었다.

팔십 평생 75편의 영화를 연출한 그의 작품 연보의 대다수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장르영화로 이루어진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단순히 대중의 욕망에 영합한 감독이었다면 195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20여 년간 한국 대중영화의 중심에 서 있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반보 앞에서 대중에게 새롭고 다양한 영화적 경험을 선사했던 것이다.

대중의 눈물과 감성에 호소하는 신파에서 진일보한 신상옥의 멜로드라마는 한국전쟁 이후 전통적인 가치관의 몰락과 새로운 질서의 확립 과정 속에서 급변하는 여성의 위치를 담고 있다. 그의 반려자로서,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배우 최은희는 ‘지옥화’ ‘어느 여대생의 고백’ ‘이 생명 다하도록’ 등과 같은 영화에서 흐느끼는 여성이 아니라 세상에 도도하게 맞서는 여성상을 선보이고 있다.

역사적인 사건을 재조립하는 것에 그치던 사극 영화 역시 신상옥의 손에 이르러서는 다양하게 재해석되었다. ‘성춘향’과 같이 오락적인 면모를 백분 활용한 사극이 있는가 하면, ‘백사부인’과 ‘반혼녀’와 같은 판타지 영화로서의 사극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대표작인 ‘연산군’과 ‘폭군연산’ 같은 작품에서는 사극을 통해 권력과 욕망으로 뒤틀린 심리 드라마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신상옥 감독이 총천연색과 대형 화면을 사용한 사극으로 관객에게 선사한 선물은 스펙터클이었다. 1963년부터 홍콩과의 합작을 통해 ‘달기’와 ‘대폭군’ 같은 영화에서 화려한 볼거리의 진수를 선보였고, 하늘을 가르는 전투기의 위용을 과시한 ‘빨간 마후라’에서는 그 정점을 이루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신상옥 감독의 진정한 재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단 한번의 포옹밖에 허락되지 않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천부적인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이었다. 보통 사람들의 보편적인 욕망과 관심을 이해했던 신상옥 감독의 재능과 영화에 대한 열정은 그의 영화들이 대중과 함께 영원히 살아 숨쉬게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조영정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ㆍ중앙대 강사(한국영화사 전공)

■ 고 신상옥 감독 연보

1926년 함북 청진 출생

45년 도쿄미술전문학교 졸업

52년 ‘악녀’로 감독 데뷔

53년 배우 최은희씨와 결혼

61년 ‘성춘향’ 명보극장서 개봉

62년 ‘연산군’ 제1회 대종상 작품상 등 8개 부문 수상,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감독상 수상

64년 ‘빨간 마후라’ 아태영화제 감독상 수상

65년 ‘벙어리 삼룡’ 대종상 작품상 수상

68년 ‘대원군’ 대종상 작품상 수상

69년 이조여인잔혹사 아태영화제 감독상 수상

70년 ‘천년호’ 스페인 스테즈영화제 감독상 수상

78년 납북

85년 북한서 모스크바영화제 여주주연상 수상작 ‘소금’ 연출

86년 북한 탈출 후 미국 정착

90년 ‘마유미’ 연출

92년 ‘닌자 키드’ 할리우드서 제작

94년 칸영화제 심사위원

2002년 도빌아시아영화제 심사위원장

2004년 유작 ‘겨울 이야기’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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