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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양극화한 이념 선동을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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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양극화한 이념 선동을 경계한다

입력
2006.04.1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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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이 하얗거나 검거나, 참이거나 거짓이거나 둘 중의 하나라면 세상살이는 좀 더 편해질지 모른다. 절대적 선이란 것이 있고 그것은 꼭 지켜야 하는 것이라면 선택에 따르는 고통도 덩달아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람 사는 일은 대체로 회색빛이다.

●세상살이는 흑-백 아닌 회색빛

요즈음 ‘뉴라이트’니 ‘뉴레프트’니 하는 이념논쟁이 빈번하다. 더 나아가 어떤 논객은 40~50대의 숨어있는 뉴라이트 지식인들이 이제는 나서야 할 때라고 선동하기도 한다. 다른 쪽은 저렇게 세를 늘려가고 있는데 뉴라이트들은 무엇 하고 있느냐는 질책이다. 자유냐 평등이냐 사이의 선택은 인류사에 주어진 영원한 딜레마인가 보다.

인간은 저마다 다른 능력을 갖고 있지만 사회가 가치를 부여하는 기준에 따라 능력의 우열이 나뉘고 능력 있는 자들의 지식 혹은 재화의 독점 또한 그에 따라 사회적으로 정당화된다. 다른 한편으로 한정된 재화를 둘러싼 갈등과 인간다운 삶을 살 보편적 권리의 인지는 우리로 하여금 소유의 불균형을 조절하도록 노력하게 만든다.

모든 것을 시장의 합리성에 맡기고 공정한 자유경쟁을 통해 살아남도록 해야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와, 기득권자들은 항상 경쟁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경쟁의 초기 불평등한 조건들을 개선하고 모든 이들이 평등하게 공존하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의 대립은 현재 한국 사회 안에서는 경제, 교육 등 사회 주요 부문에서 이념 대립의 양상마저 보인다.

이념이란 무엇인가? 이념은 믿음이 하나의 체계로서 행위 주체의 모든 경험과 가치관, 그리고 실천을 규범적으로 통제하고 지배하는 것을 일컫는다. 예컨대 ‘결혼은 인간에게 좋은 것이다’를 하나의 믿음으로 지니고 있는 사람과 그것을 하나의 이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은 매우 다르게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할 것이다. 결혼을 이념화하는 사람은 결혼을 삶의 지상과제로 여기며, 결혼하지 않은 사람을 비정상이라 단정하고 사람들에게 결혼할 것을 강하게 권할 것이다.

이념은 관념적 특성상 순수성을 지향한다. 일단 무엇이 이념화하면 그것은 필히 선명성 경쟁을 불러일으킨다. 강력한 유교 질서 안에서 유인과 처벌이라는 당근과 채찍에 의해 규범적 이념으로 화한 ‘열녀’는 조선 후기로 가면서 점점 극렬화된 형태로 나타났다. 믿음의 순수성을 보이는 좋은 방법은 남들이 하지 않는 결단과 행위를 하는 것이다. 대립하는 두 이념이 선명성을 추구하여 극단화되면 이념의 양극화는 피할 수 없다.

자유나 평등, 모두 인간 삶 안에서 소중한 가치들이다. 둘 다 충돌 없이 추구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상황에 따라 때로는 자유를, 때로는 평등의 가치를 더 소중히 여겨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 ‘때’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가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여기서는 별개의 문제이다. 문제는 둘 중의 하나만이 맞는 것이며, 하나가 옳으면 다른 하나는 거짓이라고 믿는 이분법적 태도이다.

●이념투쟁 또 휩싸인다면 불행한 일

이념화한 자유주의자는 평등을 보완적 가치로 보기보다 자유를 손상시키는 가치로 보는 경향을 가지며, 이념화한 평등주의자 역시 자유에 관한 태도에서 마찬가지의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이념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고안해낸 내적 장치이다. 우리의 생명과 삶은 이념에서 비롯되지도 않았고, 이념을 이루기 위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념 투쟁으로 인해 혹독한 시간을 건너온 우리가 또다시 순수한 이념 투신을 위한 선동에 휩싸인다면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김혜숙ㆍ이화여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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