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옥 감독님, 아직 못 다 이룬 꿈은 어찌 하시고 홀연히 눈을 감으십니까. 당신은 팔십 평생 오직 영화를 위해 온 몸을 불사르고 거듭 태어난 불사조였습니다. 당신의 삶이 곧 영화라고 한들, 그 누가 탓하겠습니까. 당신의 냉철한 머리에서 영화가 싹 텄고, 당신의 뜨거운 가슴 속에서 영화는 익어갔고, 당신의 야무진 손 끝에서 영화는 완성되었습니다.
당신은 1960년대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이끈 큰 기둥이었습니다.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상록수’ ‘벙어리 삼룡’ 등 주옥 같은 작품들은 한국 영화의 흐름을 바꿔놓지 않았습니까.
영화가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도 당신의 발걸음을 가로막을 수 없었고, 영화가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도 당신의 생애를 바꿔놓을 수 없었습니다. 진흙탕에 카메라를 세워야 하는 날이면 당신은 제일 좋은 구두를 신고 나왔고, 손수 카메라를 둘러매고 물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날이면 더 좋은 구두를 신고 반듯하게 날 선 바지를 입고 나오셨습니다. 우리는 그런 당신을 바라보면서 영화에 대한 열정과 외경심을 배우곤 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북한을 탈출한 당신은 제게 KAL기 폭파사건을 다룬 영화 ‘마유미’를 만들자고 했습니다. 제가 “엊그제 북한에서 탈출한 사람이 왜 하필이면 마유미냐”고 반문했을 때, 당신은 그저 웃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산더미 같은 관련 자료를 넘겨주었고, 취재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리하여 훌륭한 영화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태 전 나와 했던 약속 두 가지를 지키지 못한 채 떠나셨습니다.
첫째는 1950년 12월24일 중공군에 포위된 미군이 무기를 포기하면서까지 피란민 10만명을 배에 태워 탈출시킨 ‘흥남철수 작전’을 영화화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목은 당시 작전명 그대로 ‘크리스마스 카고’로 정했지요. 그때도 당신은 손수 수집한 방대한 사료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계 전쟁사상 가장 위대한 휴먼 드라마를 재현해 보려는 그 큰 꿈은 미국 국방부의 협조 등 제작여건이 뒷받침되지 못해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승만 김구 여운형 등 우리 현대사의 거목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제작이었습니다. 시대에 따라, 혹은 정권에 따라 더러 왜곡되기도 했던 이들의 삶과 현대사에 남긴 업적을 정사 사료에 근거해 오롯이 되살려보자는 것이었지요. 이 원대한 계획을 위해 우리 두 사람의 성을 딴 제작사 ‘신&신 프로덕션’을 만들자고도 하셨지요.
제가 “그런 작품 사서 방영해 줄 방송사는 없으니 괜히 헛돈 쓰지 마시라”고 했더니, 당신은 웃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안 사주면 필름라이브러리에 기증하지, 뭐.” 그 말씀 한마디에는 당신이 한국 영화, 나아가 한국의 역사와 한국인의 삶에 대해 품어온 한없는 사랑, 그리고 이 시대 영화인으로서 걸어온 치열한 발자취를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신 감독님, 먼 나라에 가시면 당신이 그토록 좋아했던 시나리오 작가 임희재, 김강윤 선생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들과 다시 손잡고 못 다 한 꿈을 이루시기를 기원합니다. 편안히 가십시오.
신봉승 시나리오 작가ㆍ대한민국예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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