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과도 같은 굉음과 함께 너비 55m, 높이 17m의 초대형 무대 장치 위로 폭포수처럼 흰 연기가 쏟아져 내렸다. 무대 뒷면을 가득 채운 스크린에 파도가 출렁이는 순간 바다가 좌우로 갈라지는 장관이 펼쳐졌다.
11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막을 올린 프랑스 대형 뮤지컬 ‘레 딕스ㆍ십계’는 무대의 스펙터클을 최대치로 보여주는 공연이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나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등 국내의 대표적인 대형 공연장들이 소화해내기 힘든 무대의 규모가 시각을 압도했다.
2000년 프랑스에서 초연돼 200만명의 마음을 사로잡은 공연의 내용은 관객들에게 이미 익숙한 것이다. 학살을 피해 살아난 히브리의 아기가 이집트의 왕자 모세로 길러지고, 그가 파라오 람세스에 맞서 노예로 비참한 삶을 살아가던 히브리인을 구출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한다는 성서 속 내용과 큰 차이가 없다.
대형 컨테이너 42개 분량의 소품과 유명 패션 디자이너 소니아 리키엘의 의상으로 꾸민, 귀보다 눈에 호소하는 무대지만 노래들은 수준급이었다. 작곡가 파스칼 오비스포가 다듬은 33곡은 사랑과 갈등, 증오, 화해 등 인간사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람세스역의 아메드 무이시와 모세역의 세르지오 모스케토를 비롯해 가수 출신이 대부분인 출연자들은 샹송을 연상시키는 감미로운 곡들과 빠른 리듬이 인상적인 팝스타일의 곡을 뛰어난 가창력으로 불러냈다.
그러나 장대한 무대와 감미로운 음악, 무난한 연출에도 불구하고 객석을 휘감는 전율의 순간은 없었다. 공연장 면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 무대는 영화의 와이드스크린처럼 시각적 청량감을 주었으나, 오밀조밀한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을 전달하기에는 오히려 장애가 되었다.
지난 1월 국내 무대에 올라 인기를 모았던 ‘노트르담 드 파리’ ‘로미오와 줄리엣’과 함께 프랑스 3대 뮤지컬로 꼽히는 작품. 주인공들은 노래에 전념하고, 무용수가 다양한 몸짓으로 극적인 변화와 인물의 감정을 나타내는 프랑스 뮤지컬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영화 ‘사랑할 때와 이별할 때’의 감독 엘리 슈라키가 무대를 지휘했다. 공연은 5월9일까지. (02)541-2686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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