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확인, 또 확인, 그리고 또 확인. 뉴스는 사실로 시작해서 사실 확인으로 끝난다. 뉴스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적절하고도 정확한 사실을 모아서 사회적 현상의 진실을 전달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사실보도의 현실은 말처럼 간단치 않다. 보도과정에서 언론사나 취재원의 이해관계가 개입하면서 사실이 뒤틀리기 쉽고, 기자들은 자신이 취재한 사실만을 너무 믿어버리는 바람에 틀린 사실, 즉 오보를 내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한국 언론의 수많은 문제는 대부분 사실보도 둔감증 때문에 발생한다. 기자들은 언론의 가장 기본이랄 수 있는 사실보도를 외면할 수 있는 이유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 우선 마감시간에 바빠 사실 확인을 할 시간이 부족하고, 거기에 속보경쟁까지 가세하면 “아니면 말고”식으로 우선 기사를 내보내는 경우도 있다.
좋은 일은 좋아서 사실 확인을 생략하고, 나쁜 일은 나빠서 사실 확인을 게을리 한다. 황우석 보도는 세계적인 과학 영웅이 태어났다는 미담을 만드는데 바빠 “좋은 일인데 사실이 좀 틀리기로서니” 하는 마음으로 사실을 확인ㆍ점검하기는커녕 오히려 과장 왜곡한 경우다. 나쁜 권력을 비판하는 기사는 비판 또는 공격에 몰두해 한쪽 사실만을 부각하느라 다른 사실을 외면하기 십상이다.
취재보도 현장에서 기자들은 이쪽저쪽 다른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다 보면 메시지 전달력과 기사의 힘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한다. 기사는 그래서 먼저 주제와 방향이 정해지고 그에 맞는 사실들로 구성되는 경향이 있다.
기사에서 따옴표 인용은 기사의 흐름에 맞는 것만 선택되는 경우가 많다. 기사 흐름과 다른 의견의 인용은 아예 배제되거나 그런 의견도 있다는 식의 구색용으로 사용된다. 심지어 따옴표 인용조차 기자들이 작문하는 비윤리적 행태도 발견된다.
기사의 주제와 방향을 강조하다 정작 기사 당사자와의 사실 확인이 생략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발생한다. 특히 비판 또는 공격적인 기사일수록 비판의 대상이 된 당사자 입장이 무시되기 쉽다.
검찰이 누구를 기소했을 때 검찰 입장만 보도되고 기소된 사람의 의견은 잘 반영되지 않는다. 권력의 비리를 고발하는 기사의 경우 비리 고발에 집착한 나머지 그 비리가 사실이 아닐 수도, 그래서 고발이 억울한 일일 수도 있음을 간과하기 십상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중앙일보의‘작은 정부론 무색’특집기사도 언론의 좋은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인 기획예산처와의 사실 확인 작업이 충분치 않아 소모적 갈등이 발생한 경우다. 이 기사는 다수의 전문가와 기자들을 투입해서 기획예산처와 유관 기관의 자료를 성실히 취재하고 분석한 뒤 문제를 제기한 탐사보도다.
그러나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국가 재정규모 측정 방법을 놓고 취재 내용을 단정적으로 믿어 버리는 바람에 기획예산처와의 사실 확인 작업에는 소홀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미국 정론지의 모범사례처럼, 기사를 보도하기 전에 당사자에게 보여줘 사실검증을 거치고 기사의 인용 부분도 발언자와 재확인하는 사실확인 절차를 거쳤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 언론의 사실보도 둔감증은 언론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엄청난 비용을 발생시킨다. 언론이 사실 검증을 거쳐 객관적이고 진실한 보도를 하면 사회는 언론보도를 토대로 의심 없이 문제해결을 논의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불행하게도 언론보도가 맞았네 틀렸네 하는 불필요한 논쟁에 시간을 허비하다 정작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지쳐 버리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신문 기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꾸만 기사를 의심하는 습관이 생겼다. 신문 기사에 연루된 당사자들은 사실 자체가 틀린 기사의 내용에 분노하고, 한쪽 편을 드는 편파적인 보도에 억울함을 느끼기 일쑤다. 세상사를 제대로 읽으려면 하나의 신문만 봐서는 마음이 편치가 않다. 신뢰할만한 신문을 기다리다 지친 독자들은 지금 신문을 떠나고 있다. 사실보도의 위기는 신문의 신뢰 위기를 부르고 있다.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