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알고 교접 하면 사내는 결코 쇠약해지는 법이 없고 온갖 병이 전부 사라지며 마음은 서로 즐겁고 기력이 충실해지니 장생이 깃듭니다. 이것을 가리켜 교법의 절도라 합니다.”
왕에게 음양의 이치를 일러 주는 미실의 언행이 자못 근엄하다. 이어 세부 강의가 뒤따른다. 아예 방중술 강론이다.
동서양 고전을 극적으로 해체, 정본이 무색할 정도로 뒤바꾼 연극 두 편이 나란히 상연된다. 극단 여행자의 ‘미실’이 신라의 이불을 들춰내 오늘의 감각으로 살려낸다면, 극단 작은 신화의 ‘맥베드’는 원작의 암울함을 한 판 광란의 쇼로 치환시킨다. 모두 일차 검증을 마친 터라, 두 번 째 무대의 변신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왕에게 색공(色供ㆍ몸을 바침) 하는 일이 업인 6세기 신라의 여인 미실이 극단 여행자의 살과 피를 얻어 환생한다. 삼국시대 신라의 전성기인 진흥ㆍ진지ㆍ진평제 등 세 명의 임금과 태자 등 8명의 남자와 사랑을 나누며 왕실을 쥐어 틀었다는 여인. 색정의 화신으로 일평생 왕을 색으로 섬겨야 했던 색공지신. 연극이 보여주는 세계는 불교와 유교의 덧칠이 씌워지기 전, ‘화랑세기’라는 야사(野史)가 펼쳐 보이는 또 다른 우리의 모습이다.
김대문의 화랑세기에 그려진 당대의 미녀 미실(549~606)을 불러낸 주인공은 작ㆍ연출가 양정웅이다. 2002년 말 소극장 혜화동 1번지의 연극제 ‘섹슈얼리티 전’에 참가, 독특한 연극 화법으로 주목 받은 ‘미실神國, 신라의 파랑새 여인’이 초연 무대였다. 이후 동서양의 고전을 감각적 이미지로 꾸준히 재현, 기대되는 차세대 연극인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화랑세기가 “백 가지 꽃의 영겁이 뭉쳐 있다”며 극찬한 미실로 분할 여배우는 김호정. 연극과 영화를 오가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는 관능의 화신을 구현하기 위해 연습실을 달구고 있다. 성병숙 고수민 전해균 등 출연. 4월24일~5월7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평일 오후 7시30분, 토 3시 7시30분, 일 4시. (02)744-7304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광기 어린 비극성이 돋보이는 ‘맥베드’가 이미지로 치환된다면? 권력욕에 사로 잡힌 인간의 불안과 근원적 나약함이 언어의 차원을 벗어나, 시청각적 합성물로 거듭난다면? 극단 작은 신화가 ‘맥베드, The Show’로 답을 제시한다.
내면의 욕망을 마이크 앞의 원맨쇼와 다양한 소리로 구체화시키고, 다양한 의복을 통해 자아와 내면의 분열을 시각화한다. 덩컨왕을 죽이고 난 후 바닥의 천에는 무수한 피발자국이 찍힌다. 죽은 자들은 객석에서 소리로 남아 맥베드를 광란의 지경으로 이끈다. 그런 시청각 이미지들이 내모는 것은 관객들의 발가벗겨진 자아일 지도 모른다.
이번 무대에서 눈여겨 볼 또 다른 주인공은 무대에서 아코디온을 연주할 채수린(45). 평양예술대 출신으로 2000년 월남해 ‘보이첵’과 ‘봉순이 언니’ 등에서 신기의 아코디언을 들려 주었다. 이번 연극에서는 공연 내내 무대 한켠에 서서 ‘개여울’ ‘무인도’ 등과 창작곡을 연주한다.
2000년 학전 그린에서 초연, 미쳐가는 어릿광대의 쇼로 해석한 파격성으로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4월28일~5월7일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화~금 오후 7시30분, 토 3시 7시30분, 일 3시.(02)744-7304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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