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역을 뒤흔들고 있는 이민 규제 강화 법안 반대시위가 1950~60년대 흑인들이 인종차별 철폐를 촉구하며 벌인 민권운동 차원으로 격상될 수 있을 것인가. 10일에도 미 100여개 도시에서 주최측 추산 200여만명이 참여한 시위가 벌어지는 등 시위 규모가 전례 없이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자 이번 시위를 미 역사상 제2의 민권운동이라고 보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날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위를 주도한 ‘공정한 이민개혁 운동’소속 리치 스톨츠는 “6개월 전만해도 이민 사회가 이렇게까지 호응을 할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없다”면서 “우리는 지금 미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만 명이 참여, 맨해튼 시청까지 가두행진을 벌인 뉴욕의 시위에서는 “이 시위는 21세기의 민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이번 시위로 미국이 여전히 이민자들의 나라인지, 아닌 지가 판가름 날 것이다”는 등의 구호가 쏟아져 나왔다.
정치인들도 이 같은 움직임에 가세했다. 미 상원 법사위에서 이민 허용 확대 법 통과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민주당 중진 에드워드 케네디 의원(매사추세츠)은 이날 10만명 이상이 모인 워싱턴 시위에 참가, “이번 시위는 50여년 전 흑인들의 민권운동을 떠올리게 한다”면서 “시위 참가자들의 마음가짐이나 집중도를 볼 때 아주 흡사하다”고 연설했다.
뉴욕 시위에 참여한 한인들도 이민 사회의 움직임을 제2의 민권운동으로 규정했다. 한 한인 관계자는 “이민법 개혁운동은 미국 전역에 번지고 있는 민권운동”이라며 “이민자들의 나라인 미국이 새로운 이민자들에게 배타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과거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2의 민권운동 주장은 백인 주류사회에서 강한 반감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법을 어기고 불법 체류하는 사람들이 행진을 하면서 보상을 받겠다고 나서는 것은 나머지 미국인들을 화나게 만든다”는 정서가 이들의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내 이민 사회가 본격적으로 민권운동을 표방할 경우, 엄청난 사회갈등으로 증폭될 소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시위 주도자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갈등이 고조되면 시위가 평화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 지에 대해 우려가 없지 않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워싱턴=고태성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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