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수들이 보직을 밝힌다”고 비판하는 글을 읽을 때마다 영 불편하다. 보직을 원치 않는 교수의 입장에선 공적 일을 맡아 고생하는 보직 교수들이 고맙기 때문이다. 보직 교수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대학마다 다르다. 혜택이 큰 대학에선 교수들의 보직 경쟁이 치열한지 모르겠으나, 그걸 일반화하는 건 문제가 있다.
어느 분야에서건 서로 하겠다는 경쟁이 치열하면 혜택을 줄이고, 아무도 하지 않겠다고 하면 혜택을 늘리면 된다. 만인이 동의할 법한 간단한 원리인데도, 이 원리는 의외로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방송계 50여개 공직 쟁탈전 치열
최근 양문석 EBS 정책위원은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이 발행하는 ‘언론노보’에 쓴 글에서 5월부터 7월까지 방송계에 생기는 50여개의 공직을 놓고 서로 하겠다는 경쟁이 너무 치열해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왜 그럴까? 혜택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양 위원이 지적한 혜택은 다음과 같다.
“방송위원 꿰차면 1억원에 가까운 연수입에 차와 운전사까지 딸려 나온다. 방송사 사장들도 와서 굽신거린다. 경조사 한번 나면 전국의 명사들이 다 달려온다. 지역방송사 사장과 간부들은 당연히 도열하고, 어느 누가 해 보고 싶지 않겠는가? 마지 못해(?) 방송사 이사 자리 하나라도 꿰차면 3,500에서 4,000만원 가량의 용돈이 생기는데, 한 달에 한두 번 잠깐 가서 앉아 있으면 그만이다.”
에헴 하고 큰소리 치고 경조사 때 재미 보는 혜택이야 문화적인 것이니 지금 당장은 어찌할 수 없다 하더라도, 물질적 혜택은 이대로 좋은지 검토해보는 게 좋겠다. 일 자체에 열의를 갖고 있는 사람은 물질적 혜택이 박해도 방송계 공직을 맡으려 하겠지만, 이들은 물질적 혜택에 눈독을 들이는 사람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기 십상이다. 영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다.
정부와 언론은 억대의 수입에 차와 운전사까지 딸려 나오는 공직이 얼마나 되며, 그게 모두 다 적정한지 검증하는 작업을 대대적으로 시도하면 좋겠다. 이건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는 일이다. 체제 운영의 기본 문제라고 해도 좋다. 현재 한국사회의 인정투쟁 양상이 극도로 왜곡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의 삶은 남의 인정을 받기 위한 투쟁이며, 한국인의 그런 ‘타인 지향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문제는 사회적 인정의 기준과 투쟁 방식이 너무 획일화돼 있다는 점이다. 가장 이상적인 건 권력ㆍ금력ㆍ명예의 3분법이 지켜지는 것인데, 세 가지를 모두 갖겠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그게 당연시되는 풍조마저 만연해 있다.
그런 사회가 모든 면에서 ‘양극화’로 치닫는 건 필연이다. 정녕 양극화를 해소하고자 한다면, 지금과 같은 ‘인정투쟁의 획일화’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위 공직자들의 물질적 풍요를 보장해줘야 그들이 비리를 저지를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오래된 속설이 과연 유효하며 바람직한 것인가? 각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 말년엔 고위 공직을 맡는 걸 당연시하는 풍토는 오히려 ‘청렴’과 ‘명예’의 가치를 죽이는 건 아닌가?
●권력·금력·명예 서로 분리해야
공기업과 정부 산하단체 인사도 ‘낙하산 인사’ 이전에 고위직에 주어지는 혜택이 적정 수준인가 하는 게 쟁점이 되어야 한다. 낙하산 타는 걸 꺼리거나 저울질해볼 정도로 혜택을 대폭 줄인다면, 진정 일에 욕심을 내는 사람이 선택될 가능성이 높아질 게다.
공직 임명을 ‘횡재’했다고 보는 시선 속에서 고위 공직자가 어찌 신뢰와 존경을 얻을 것이며 일인들 제대로 해낼 수 있겠는가. 국민이 공직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게끔 하는 게 화려하진 않아도 진정한 개혁이다. 그걸 헛된 꿈이라고 본다면, 정치ㆍ행정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합법적 착취’라고 인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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