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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가상 인터뷰-대화] <6> 메리 월스톤크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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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가상 인터뷰-대화] <6> 메리 월스톤크래프트

입력
2006.04.1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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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페미니스트’, ‘페미니즘의 어머니’로 불리는 영국의 사상가, 저술가, 교육자. 당대 계몽주의와 프랑스 대혁명의 강력한 영향 아래에서 저술된 ‘여성 권리의 옹호’(1792)는 페미니즘의 고전이다. 지주계급 가정의 맏딸로 태어나, 농장을 경영하다 계속해서 실패한 아버지를 따라서 영국 이곳 저곳에서 생활을 했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가 상습적으로 어머니를 폭행해서, 메리 월스톤크래프트는 어려서부터 어머니 침실 근처에서 자면서 어머니를 지켜주려 했다고 한다.

또한 소녀들을 위한 시골의 주간 학교를 잠깐 다닌 것 말고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독학으로 스스로를 교육시켜 나갔다. 18세가 되자 휴식과 학습을 위한 자기만의 방을 가족에게 요구했으며, 어머니가 죽은 후 가족을 떠나 친구 패니 및 여동생들과 학교를 세운다.

그러다 결혼한 패니의 출산을 도우러 간 사이에 학교가 망해가자 학교 문을 닫고 저술업을 시작한다. 최초의 저작은 ‘딸들의 교육에 대한 생각’이란 제목의 팸플릿이었다. 1790년에는, 프랑스 혁명을 격렬히 비난하는 보수주의자 에드먼드 버크의 저작에 대한 대응으로 ‘인간 권리의 옹호’를 출간하고, 곧이어 ‘여성 권리의 옹호’를 출간한다.

프랑스 대혁명을 몸소 겪기 위해 프랑스로 건너간 그는 미국 혁명군 출신 사업가 길버트 임레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임레이와의 사이에서 딸을 얻어 패니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결국 임레이가 두 사람의 관계에 충실하기는커녕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두 번의 자살을 시도한다. 1797년,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무정부주의 사상가 윌리엄 고드윈과 결혼하게 되는데, 결혼 제도에 반대하던 두 사람이 결혼식을 치르게 된 것은 그의 임신 때문이었다.

한 달 뒤에 결혼 사실을 공표한 두 사람은 낮에 작업할 때에는 서로 다른 숙사를 사용했다. 1797년 8월, 딸 메리 월스톤크래프트 고드윈이 태어나지만 그 자신은 출산 때의 패혈증으로 열흘 뒤에 사망한다.

다음 해 고드윈은 그녀의 전기를 출간한다. 그 딸은 17세 되던 해에 유부남인 낭만주의 시인과 사랑의 도피를 감행하고 나중에 그 유명한 시인과 결혼을 하게 되는데, 바로 고딕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저자인 메리 셸리다. 윌리엄 고드윈은 자유연애를 주창했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오랫동안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 주류 페미니즘 권력과 쉽게 타협… 국면 전환용 여성관료 기용 뭐 별난가

사회에서 소외된 여성층 입장에서 그들 대변할 수 있는 페미니즘이어야

이재현(이하 현): 미즈 월스톤크래프트, 직접 뵙게 되어 참으로 영광입니다.

월스톤크래프트(이하 메리): 응, 그냥 메리라고 불러. 그리고 나 아직 마흔이 아니니까 할머니 취급하지 말고 그냥 평소 너답게 해. 편하게‘야자 트자’.

현: 에헴, 그럼(주뼛주뼛)… 메리, 오늘 널 부른 건 요즘 한국의 정치 변화 때문이야. 며칠 전에 강금실씨가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고, 한명숙씨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한국 최초의 여성 총리가 돼. 바야흐로 명실상부한 여성의 정치제도권 진입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누구보다 먼저 공적 영역에서 남녀평등을 주장했던 메리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말이야.

메리: 으응, 그렇군. 한국 여성들의 정계 진출이 표면적으로는 활발해지는 듯한데, 이게 대체 뭔 의미가 있냐는 거지? 여성 총리나 여성 서울시장이 등장한다고 하면, 페미니즘의 정치적, 사회적 힘이 더 커지고 동시에 그 스펙트럼도 다양하게 확산되길 기대하게 되는데, 내 보기에 현재대로라면 그럴 전망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정치권에서 페미니즘의 후광을 이용해 먹으려고만 하는 것 같으니 말이야.

현: 꼭 그렇게만 볼 수는 없지. 한명숙씨는 여성운동을 오래하면서 성과도 많이 이루었고, 안정적이고도 호감을 주는 이미지를 갖고 있어. 또 강금실씨는 보기 드물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개성적인 캐릭터인데다가 팬도 많아. 두 사람 모두 나름대로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볼 수도 있고.

메리: 넌 지금 잘 나가는 여성 두 명 가지고 여성 전체의 권리가 신장되었다고 보는 거니? 너, 그렇게 바보였니?

현: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남자들끼리만 해쳐먹는 것보다는 나은 거 아닌가.

메리: 한명숙씨가 지명된 후에 “남성 중심적인 수직적 리더십보다는 자발성을 유도해 내고 수평적 여성 리더십을 발휘해 국정을 운영해보도록 하겠다”고 했고, “모성의 관점에서 따뜻하게 봉사하고 싶다”고 했는데 따지고 보면 다 문제가 있는 발언이야.

현: ???

메리: 남성을 수직으로, 여성을 수평으로 단순화시킨 것은 ‘급진적 페미니즘’의 아주 통속적인 발언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명숙씨 발언의 경우 그 효과에 있어서 젠더(gender)에 관한 기존의 가부장제적 통념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어. 한국의 주류 페미니즘 행태에 대해 외국에서는 국가 페미니즘(state feminism)이라고 해서 비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 풀뿌리 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가 성취되기 전까지 국가 권력과 너무 쉽게 타협하는 건 문제가 있는 거야.

현: 상당히 어렵구나. 급진적 페미니즘 입장에서 보면 너야말로 한물 간 ‘자유주의 페미니즘’이잖아. 너는 공적 영역에서의 남녀평등, 그러니까 여성의 참정권이나 재산권, 그리고 특히 네 경우에는, 교육 받을 권리 등을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주장했잖아. 그렇다면 네 입장에서는 여성 총리나 여성 서울시장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 되어야 하는 거 아냐?

메리:“사적인 것이야말로 정치적이다”라는 급진적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볼 때나, 사회경제적인 관점에서 여성의 불평등이나 예속을 강조하는 다른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볼 때, 과거 나의 페미니즘 이론은 여러 모로 한계가 많다고 할 수 있어. 내가 죽은 다음에 페미니즘 운동이 발전하다 보니 지금에 와서는 내 입장이 낡아버린 거지 뭐.

또 세계 각국에서 여성 대통령, 수상들이 숱하게 나온 상황에서, 그저 ‘여성’ 총리, ‘여성’ 서울시장이 나왔다는 것에서만 의미를 찾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는 생각도 들고. 하여간 오늘은 페미니즘 역사와 이론에 관해 공부하는 날이 아니니까, 간단하게 말할게. 우선 노무현 정권의 한명숙씨 지명은 본디 정치적 국면 전환용인 거야. 또 강금실씨의 출마 선언에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얘기가 있었니? 그걸 확인하지 않은 채 여성이라는 것에만 사로잡혀서 환호해서는 안 되는 거지.

현:……

메리: 내 생각에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페미니즘은 여성인데 비정규직이거나, 외국인 이주노동자거나, 못 배워서 가난하거나, 국제결혼을 했지만 한국말을 못하거나, 아니면 단지 못생겼다거나 팔자가 사납다거나 기가 세다거나 리비도가 넘친다는 이유로 해서 가정이나 사회로부터 배제되거나 버림받은 대다수의 여성들의 권리와 삶에 대해 발언해야 하는 거야. 물론 한명숙씨가 강금실씨가 총리나 서울시장이 되면 지금보다야 더 나을 수 있겠지.

그렇지만 현재의 제도권 정치 수준에서 볼 때 한명숙씨나 강금실씨가 여성들을 위해 움직일 수 있는 운신의 폭이라는 것이 아주 좁다구. 대통령 자신이 여성 총리 기용을 시도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바로 그 대통령의‘전직 식당 동업자’가 KTX 여성 승무원들을 탄압하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보란 말이야.(편집자 주:한국철도공사 이철 사장은 1990년대 말 노 대통령, 박계동 의원 등과 동업해‘하로동선’이라는 고깃집을 운영한 바 있다.)

현: 듣고 보니 그렇네. 국회에서는 최연희 의원에 대한 사퇴촉구 결의안에 대해 반대표가 많이 나와 겨우 과반수를 넘었지. 한명숙씨나 강금실씨가 바로 그 84명의 꼴통 국회의원들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지 않는 한 진정한 여성 대표라고는 할 수는 없겠지.

메리: 그러니까 ‘여성 운동’이라든가 ‘여성 해방’이라는 입장과 관점이 여전히 중요한 거야. 일하는 여성, 일자리가 없는 여성, 정규직이 아닌 여성, 혹은 평범한 아줌마들인데 ‘자기만의 방’을 갖지 못한 여성들을 제대로 대변할 수 있어야만 해.

또 한미FTA 문제도 그게 무엇보다 여성들에게 피해와 고통을 주기 때문에 여성들 스스로가 결사적으로 비판하고 반대해야 하는 거야.(편집자 주: 버지니아 울프는 비평적 에세이집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 해방’의 핵심으로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자기만의 방’을 강조했다.)

현: 음 그렇구나, 네 주장은 결국 페미니즘이라는 게 하나의 추상적 이념 덩어리가 아니라, 복수의 다양한 페미니즘이 현실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거네. 그러니까 현재 한국의 정치판에서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페미니즘이라는 것은 힘없고 억압받고 소외당하고 고통받는 여성들의 입장과 관점에 선 페미니즘이어야 한다는 거구. 동시에 바로 그런 여성들이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정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지.

메리: 한꺼번에 많이 배우니까 꽤 힘들지? 그래도 아무튼 더 이해하고 더 실천하도록 노력하려무나. 여성의 진정한 정치세력화가 이뤄지게 되면 그때 다시 한번 보자꾸나, 현.

문화비평가 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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