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관은 개전 초기 단독 정찰병이 수집해 온 정보를 토대로, 적과의 산발적 전투를 치르기보다는 방어에 치중하면서 자원전을 펼치기로 결정한다. 병력을 생산해서 초기에 적을 제압하지 않고 장기전을 도모한다는 뜻이다. 이 결정에 따라 생산된 자원으로 자원 생산을 담당하는 인원을 재창출하기로 한다.
회사로 말한다면 회사에서 벌어들인 이윤으로 다시 회사에 재투자를 하는 것이다. 대신 상대방에게 밀리는 병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하여 병력을 수비에 총동원하는 모험을 감행한다. 적은 수비에 치우친 전선을 공격해서 아무 효과도 보지 못하다가, 후방 교란을 선택한다.
정예 공수부대가 후방에 투하되지만, 사령관의 발빠른 지시와 원활한 대처로 후방 교란 작전은 미미한 성과를 올리고 만다. 이 순간 사령관은 그 동안 축적한 자원으로 막대한 양의 군수물자와 병력을 생산해내어 역공을 감행한다. 이미 소규모의 국지전과 특공대의 작전에 자원을 소진한 적군은 거의 저항도 못해보고 무너지고 만다.
실제 상황을 얘기한 것이 아니라, 프로 게이머가 펼치는 스타크래프트 경기 중 하나를 예로 든 것이다. 전략적 사고와 기민한 반응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이 게임에서 느끼는 감흥은 살벌하기까지 하다.
현실의 상황과 너무나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현란한 그래픽이 눈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거나 3차원 음향 효과가 귀를 즐겁게 해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게임의 승부가 잔인한 현실의 ‘재앙이론(Catastrophe theory)’를 따르기 때문이다.
특히 생산된 자원을 재생산에 투자하느냐, 병력생산으로 소진하느냐에 대한 전략적 선택은 반환출력(feedback)의 원칙을 따른다. 애초에 10으로 시작한 생산인원으로 10을 생산했다 치자.
그 중 5를 재생산에 투입한다면, 다음 단계의 생산량은 10이 아니라 10에 재투자한 5를 반환해서 입력한 15가 된다는 것이다. 재생산에 투자가 없는 경우 생산량이 10, 10, 10 으로 일정한 것에 비해, 반씩 재투자하는 경우는 10, 15, 22.5, 33.75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이런 경우를 비선형적인 응답이 일어난다고 한다.
비선형적인 응답이 있는 경우에는 특이점이 생겨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재투자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 일정한 시간이 흐른 후의 결과가 매우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특이점은 실을 공중에 던져서 땅에 떨어진 후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땅에 떨어진 실은 서로 겹치는 경우가 생긴다. 우리가 실을 따라서 걸어간다고 생각할 때, 실이 겹쳐서 열 십(十)자가 되는 경우에는 3갈래길을 만나게 되어 진행방향을 선택해야만 한다. 선택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산꼭대기에 있는 공이 애초에 어느 방향으로 굴러가느냐에 따라 동해로 굴러갈 수도 있고 서해로 굴러갈 수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애초에 1이나 2의 재투자를 하느냐 아니면 병력을 선택하느냐는 사령관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작은 선택이다. 하지만 어느 갈림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승리와 패배가 갈리게 된다. 이것이 1960년대에 프랑스의 수학자 르네 톰(Rene Thom)이 주창하기 시작한 ‘외부 조건의 사소한 변화’에 의한 운명의 선택, 즉 ‘재앙이론’이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보면서 때때로 스스로를 게임 속에서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유닛이 됐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사령관의 결정에 따라 시간을 벌기 위해 무의미한 자살공격을 해야 하기도 하고, 압도적인 우세로 적진으로 진격을 할 수도 있다. 우리편의 기술력(테크트리)이 모자라면 비행기에 무의미한 총질을 해대는 보병이 될 수도 있다.
만약에 그런 상황이 현실이라면, 생명을 내놓지는 않더라도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면, 적어도 사령관의 명령은 승리를 향한 선택이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연세대 토목공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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