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 그 애 여자 사촌들이 학교를 구경한 적이 있다. 여름방학 보충수업 때 미리 허락을 받고 방문한 것이다. 미국에서 자란 그 여자애들의 방문 소감이 민망하고 충격적이었다.
“애들 표정은 밝은데, 학교가 마치 감옥 같아요.” 나무 몇 그루 없는 휑뎅그렁한 운동장, 회색 시멘트 담으로 둘러싸인 낡고 우중충한 건물, 똑같이 교복을 입은 학생 등이 기대와 퍽 달랐던 모양이다. 하긴 교도소 풍경과 닮았을 것이다. 어느 나라에도 나무 많은 감옥은 없는 것 같다.
▦ 사적인 얘기를 자주 쓰는 게 미덕은 아니겠지만, 딸 얘기도 하고 싶다. 나무 심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몇 해 전 가을 날, 중학생이 된 딸이 모교인 초등학교로 낙엽을 주우러 갔다가 황당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친구와 함께 모교의 버즘나무(플라타너스) 단풍잎을 주우려고 갔는데, 100년 가까이 자란 그 거목이 온데 간데 없더라는 것이다. 학교는 리모델링 중이었다. 녹지공간을 없애고 실내체육관과 수영장 등을 짓고 있었다. 1년 전 주운 단풍잎도 간직해 오던 아이에게서 모교의 추억과 정다운 이미지가 사라지는 듯했다.
▦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나무를 뽑아내고 동물 사육장이 있던 자리에 건물을 마구 세우자, 좋은 학교로 소문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위장전입 등으로 인근에서 많은 학생이 몰리고 있다고 한다. 물론 건물은 산뜻하고 편리하게 바뀌었고, 주민과 함께 사용하는 수영장도 생겼다. 그러나 녹지공간과 자연체험 시설을 체육관과 수영장으로 대체한 것이, 정서교육과 성장에 더 도움을 줄 리가 없다. 인간 정서는 성장기의 자연환경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 각급 학교의 탈(脫)자연화 현상이 심각하다. 학교 뿐 아니라 주택까지 사이버 공간처럼 돼가고, 그것이 좋고 비싼 양 왜곡되고 있다. 비유하자면 웰빙이 아니라 감옥 시설이 좋아지는데 불과하다. 교육은 반자연적 문명의 흐름을 다시 한번 거슬러, 생명존중의 물길을 터야 한다.
주택이나 관공서, 회사 등과 비교할 때, 가장 낙후된 것이 도시 학교 환경이다. 학교의 회색 담은 더 많이 헐리고, 나무는 울창하게 자라야 한다. 일부 학교와 교사 간에 호응을 얻고 있는 ‘아름다운 학교운동’이 널리 번졌으면 한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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