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월 간 프랑스를 뒤흔든 최초고용계약법(CPE) 사태는 결국 승자(노조, 학생)와 패자(정부, 집권 여당)를 남긴 채 일단락했다.
언론들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프랑스 발 역풍이 시작됐다며 이번 사태가 전 세계에 가져 올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10일 기자 회견장에 나온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는 사생결단 뒤 패한 장수처럼 비참했다. 그는 “급변하는 상황과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이 원하고 있다”고 패배를 시인했다.
빌팽 총리는 그러면서도 “CPE는 고용주에게는 해고의 유연성을 노동자에게는 일 자리의 안전성을 높여주기 위한 공평한 대안이었다”며 “모두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빌팽 총리 자신은 퇴진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언론들은 그의 정치 생명이 끝난 것이나 다름 없다고 결론 짓고 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또 다른 패배자다. 그는 비록 지난달 31일 수정안을 제시하면서 사태 해결에 나섰지만 빌팽 총리와 함께 CPE를 밀어붙이면서 잃은 점수를 만회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내년 대선에서 그의 영향력도 크게 떨어질 것으로 언론들은 내다보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 겸 집권대중운동연합(UMP) 총재는 대박을 터뜨렸다는 평가다.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각축을 벌이던 빌팽 총리가 좌초하면서 무혈 입성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빌팽 총리 역시 노동시장 유연성에 대한 평소 소신을 유지하기 힘들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노조를 진정한 승자로 지목했다. 프랑스 주요 노조들은 2003년 장 피에르 라파랭 전 총리가 내놓은 연금 개혁안에 대한 이견 이후 냉랭한 관계를 이어왔다.
그러나 CPE 반대를 계기로 프랑스 노조는 재결집한 것은 물론 정치적 역량을 확대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노조는 이 여세를 몰아 정부의 또 다른 노동 시장 유연화 정책도 추진할 계획이다. 사회당도 지난 한 달 동안 새 당원을 1만 8,000명이나 모집하는 등 뜻 밖의 성과를 얻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CPE 사태가 노동시장 유연성을 놓고 진통을 빚는 세계 곳곳의 신자유주의 정책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 리처드 울프 교수는 “CPE 반대 시위에 노조와 학생들이 강하게 연대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며 “이는 복지국가 해체 시도가 한계에 이르렀고 그 해체를 계속할 경우 대중 저항에 직면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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